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의 두려움을 묻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다"(마태 8,24).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과 파도에 휩쓸립니다. 제자들은 겁이 나 죽을 지경인데 예수님은 천하태평 주무시고 계시네요. "그런데도"라는 접속사에는 예수님께 대한 제자들의 불만스런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8,26)
당신을 깨운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한마디 하십니다. 꾸짖으신다기보다 안타까워하시는 음성입니다. 꾸짖음은 뒤이어 바람과 호수에게 내리실 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참 편안하고 좋으신가 봅니다. 저리도 맘 편히 잠드시는 걸 보니 말입니다. 반면 제자들은(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여전히 기댈 곳 없는 사람처럼 동동거립니다.
조금만 들썩해도 겁에 질리고 두려움에 떨지요. 주님과 그분 현존에 대한 존재적 믿음이 부족해서인 것 같습니다. 사실 배를 뒤흔드는 풍랑과 파도도 하느님 품 안의 일인데 말이지요.
제1독서에서 아모스 예언자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인과관계를 나열합니다.
"성읍에 재앙이 일어나면 주님께서 내리신 것이 아니냐?"(아모 3,6)
이스라엘이(우리가) 겪는 자연재해나 천재지변, 외세의 침략과 내분 모두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으시고 사랑을 쏟으시는 이 세상, 이 백성에게 닥치는 모든 일에는 하느님의 뜻이 들어 있지요.
그것이 당장 비극처럼 보일지, 행운처럼 보일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풍랑이나 파도 건, 따사로운 햇살이나 미풍이건 하느님 마음은 하나입니다. 풍랑과 파도에 질겁하고 햇살과 미풍에 흐믓해하는 건 인간의 가볍고 얕은 반응일 뿐이지요.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아모 4,11).
바로 이 말씀에 하느님의 속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도"라는 접속사에는 사랑하는 존재에게 버림받고 외면 당한 하느님의 상처 입은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시는 모든 자애와 축복, 징벌과 재앙에까지도 당신 백성과의 사랑을 회복하시려는 그분의 간절한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 백성을 마음껏 사랑하고 또 그들에게 한껏 사랑받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바람은 번번이 좌절되고 꺾이지요. 당신 백성이(우리가) 도무지 못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고통 앞에서 그저 겁에 질리고 두려움에 휩싸이거나, 행운 앞에서 만족해 즐기는 정도로 삶을,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가벼이 대하니까요.
아쉽게도 영혼이 이 상태라면 삶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풍에서도, 또 충만한 축복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누리기는커녕 그분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중심을 잃고 허둥대는 우리에게 왜 겁을 내느냐고, 믿음은 어디 갔느냐고 물으십니다.
자,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둘러봅시다. 우리는 배 안에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평화로이 계십니다. 호수가 요동쳐봤자 하느님 안에 있고요. 지금 필요한 건 믿음이지 호수 저편의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평화는 환경이 아니라 믿고 의탁하는 마음에서 옵니다.
사랑하는 벗님! 벗님은 무엇을 두려워하시는지요? 여러분 각자가 안고 가는 두려움이 무엇이든, 그 두려움을 거두어, 내 품에서 편히 주무시는 주님 발 앞에 내려 놓읍시다. 그분의 편안하고 평화로운 쉼 안에 우리 몸을 누이고 마음도 기대어 봅시다.
풍랑은 잠시 잊고 그분 숨소리에 나의 호흡을 맞춰 봅시다. 그대로 그분께 머무릅시다. 그분이 내 옆에, 내 품 안에 계시는데 무엇이 두려울까요. 이 코로나19 상황도 우리 각자가 처한 위기 상황도 주님과 함께 하기만 한다면 그냥 다 지나갈 겁니다.
이 관상기도 안에서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마태 8,26)는 말씀을 체험하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누리시는 깊은 의탁의 잠을 함께 누리며, 더불어 평안하고 평화롭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올해의 반이 지납니다. 전반기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후반기는 더욱 말씀 안에 기쁨 누리시길 빕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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