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6월 27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dariaofs 2020. 6. 27. 05:35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저는 제1독서가 묻고 복음이 답하는 모양새를 봅니다.

"처녀 딸 시온아, 너를 무엇에다 견주며 위로하리오? ... 누가 너를 낫게 하리오?"(애가 2,13)

애가는 이방 민족의 침입으로 무너진 도성의 절규와 탄식을 들려줍니다. 침략 전쟁으로 온 민족이 실의와 절망에 빠지지요. 장정들은 칼에 맞아 죽고 젖먹이들은 굶어 죽고 여인들은 유린당해 죽고 패전국의 신은 조롱당하다 무너진 성전과 함께 자취를 감춥니다.

이 기막힌 고통과 환난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삶 곳곳에서 터져나옵니다. 사고와 실직, 병고와 죽음, 이별과 증오, 테러와 전쟁 등 애가의 애간장을 끊는 듯한 탄식은 더 이상 패망한 이스라엘만의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 위의 저 질문 역시 그들만의 질문이 아니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지요.

"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마태 8,13).
"당신 손을 대시니 ... 열이 가셨다"(마태 8,15).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8,16).

이렇게 삶의 벼랑 끝에 몰렸던 이들이 구원을 체험합니다. 구마와 치유는 육체적 상태의 호전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관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 이웃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주님께서 내리신 징벌로 '시들어가던 백성'(애가 2,2 참조)이 강생하신 주님의 자비로 되살아납니다. '누가 너를 위로하고 낫게 하랴?'는 한탄 섞인 질문에 보내는 응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구약 백성의 눈물에는 사실 '민족주의'가 짙게 드리워져 있지요. 예수님은 이방인 백인 대장의 믿음을 들어 이 우월주의적 폐쇄성을 지적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8,10.12).

구약 이스라엘이 "우리"라고 여겼던 견고한 민족주의적 울타리는 예수님을 통해 개방되고 확장됩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는 이스라엘 핏줄이건 아니건 구원의 대상입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조건은 족보에 달려 있지 않고 삶의 질곡과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며 믿음에 희망을 두는 모든 인간 실존에 근거합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 나을 것입니다"(마태 8,8).

군대의 위계 안에서 명령과 복종을 배운 백인대장은 말씀과 순명과 이루어짐의 메카니즘을 누구보다 깊이 통찰한 듯합니다. 우리도 매 미사 때, 영성체를 준비하며 이 고백을 되풀이하지요. 한 이방인의 믿음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믿음을 재촉하고 일깨웁니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마태 8,13).

예수님께서 그 믿음에 응답하십니다. 율법과 선민사상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이 놓친 믿음이고, 먼 발치서 진리를 목도한 이가 겸손히 선택한 믿음입니다. 사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이 말씀을 해주고 싶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루어짐의 전제는 믿음이지요. 믿음은 주님의 은총과 우리의 결단이 일으키는 불꽃이라 감히 이름해 봅니다.

사랑하는 벗님!
벗님은 우리가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믿지요? 또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분이심을 믿지요? 비록 우리의 이 믿음이 아직 부족하고 미흡하지만, 믿은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믿음의 길을 꿋꿋하게 한걸음씩 걸어갑시다. 믿음의 여정의 동반자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