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dariaofs 2020. 6. 25. 04:11

6.25 전쟁이 일어난지 70년이 지났습니다. 조심스럽게 평화를 지향하며 나아가던 남북관계가 모호하고 거친 기류에 휘말려 실망스럽게 흘러가는 오늘, 주님께서 용서를 이야기하십니다.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쭌 일곱은 완전한 숫자입니다. 그로선 참고 또 참을 수 있는 한계의 최대치이고, 이만하면 충분한 횟수일 겁니다. 그 이상 용서하면 바보나 호구 취급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그런데 누가 일흔일곱을 헤아리고 있겠습니까! 완전한 수 일곱이 두 차례 반복된, 완전에 또 완전한 수라는 뜻일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 말씀은 횟수 계산하지 말고, 한계를 두지 말고, 무한대로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마태 18,20).

주님 이름으로 두세 사람만 모여도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하나의 역설이 숨어 있지요. 곧, 두세 사람이라도 모이면 용서할 일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용서할 일이 생긴다는 건 서로 아프게 하는 일이 있을 거란 말이지요.

아무리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도 각자 역사와 배경과 성향이 다르다 보니 갈등과 오해의 소지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족, 공동체, 모임, 단체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건 그 공동체 안의 누군가가 끊임없이 인내하고 희생하며 자신을 비우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중의 누군가가 용서의 달인이기 때문이지요.

용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과 가족에게 큰 상처와 피해를 입혔을 때,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렸을 때에는 더 그렇지요 머리로 이해한 용서가 마음과 손끝까지 전달되는 것은 마치 별개의 일처럼 분열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신앙의 의무와 감정이 팽팽히 맞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앙의 정체기를 맞기도 하고요.

인성이 좋은 것만으로, 감정만 잘 조절한다고,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마음이 넓다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용서가 뚝딱 되지는 않지요. 자신이 나쁘고 부족해서가 아니라 용서가 영과 육의 매우 통합적이고 전인적인 작업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용서는 나의 분투 노력과, '나 여기 함께 있다'고 하시는 주님의 도움이 콜라보를 이루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용서받았듯이 용서하라고 권고합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에페 5,1).

관계 안에서 인간적으로 용서가 어려울 때 이 말씀은 특효약이 될 것입니다.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우리가 받은 용서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용서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더 많이 사랑받은 이는 받은 사랑을 더 관대히 내어주어야 합니다.

제1독서는 회개하고 주님께 되돌아오는 이들이 받게될 축복을 이야기합니다.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신명 30,3).
"더 잘 되고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다"(신명 30,5).

하느님은 당신께 등돌린 배신과 불륜의 과거를 깨끗이 잊어주시고 처음처럼, 아니 처음보다 더 살뜰히 돌보고 사랑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분은 용서를 통해 사랑이라는 당신 본성을 한껏 자유로이 펼치고 또 누리십니다. 그러고 싶으십니다. 용서는 가장 하느님스러운 관계적 특질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예수님은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 자녀다운 가장 큰 용서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약에서 만난 자비와 용서의 하느님이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드러나신 것이지요.

사랑하는 벗님! 혹시 이제는 내가 숨은 용서의 달인이 되어 줄 차례가 아닌지 주변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족과 이웃과 공동체가 누린 그동안의 평화가 어느 누군가가 고요히 실천한 셈하지 않는 용서의 열매였다면, 이젠 내가 좀 나누어 져도 좋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함께 계시는 주님이 도와주시고 응원하실 겁니다.

남북한이 서로 끊임없이 용서하고 또 용서함으로써 사랑안에 하나가 되는 그날을 꿈꾸며 기도하는 날 되시길 빕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