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6월 23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dariaofs 2020. 6. 23. 05:34

오늘 미사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요약합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예수님께서 성경에 담긴 무수한 가르침들을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하십니다. 그리고는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단언하시지요.

훗날 예수님은 어느 율법학자의 질문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실 것입니다(마태 22,34-40 참조).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까지 하시지요. 그러니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은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인 사랑을 구체화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누구도 타인이 자기를 해치거나 증오하길 바라지 않지요. 본성적으로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것은 선의와 호의, 자비와 사랑입니다. 자기가 받고 싶은 마음을 타인에게 베푸는 것, 또 자기가 받고 싶은 대접을 타인에게 하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를 때, 남에게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를 때는, 내가 받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역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

그런데 사랑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에 사랑도 서툴고 미숙하지요. 하느라고 했지만 나도 아프고 너도 아픈 시행착오를 거치게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사랑도 자라고 우리도 자라니 실패한 건 아니지만, 과정이 결코 녹록치는 않습니다.

예언자들이 그랬고 예수님이 그러셨듯 사랑은 번번히 배척당하고 공격받고 모욕당합니다. 민족과 인류의 선의를 위해 온 몸을 던져도 돌아오는 건 조롱과 버림받음, 죽음일 가능성이 더 크지요. 그래도 이미 사랑의 좁은 문으로 이어진 비좁은 길에 들어선 이상 발을 뺄 수 없습니다. 길이 더 위험하고 거칠고 외로워질수록 따름의 확신은 더욱 선명해지니까요.

우리 모두 부족한 인간이다 보니 비좁고 험난한 길을 수퍼맨처럼 넉근히 극복하면서 씩씩하게 걷지는 못하지만, 엎치락뒤치락 우왕좌왕 하면서도 따름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갑니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찾은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마태 7,6).

같은 의미를 원색적인 표현의 다른 단어로 반복하시니 어조가 더 강렬해집니다. "거룩한 것"과 "진주"는 사랑과 진실과 믿음 등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들이 아닐까 합니다. 때론 성소나 소명이기도 하고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주님께 지키고픈 신의이기도 하겠지요.

그렇다면 "개들"과 "돼지들"은 그런 가치들의 소중함을 모를 뿐만 아니라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나아가 제 욕망을 위해 하느님의 귀한 보물을 파괴하고 말살하려는 악의 힘을 상징할 겁니다. 슬프게도 그런 힘은 제 민낯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과 사건을 통해 교묘히 존재하지요. 그래서 우리의 순진하고 어설픈 사랑은 때때로 상처 입고 잠시 길을 잃기도 합니다.

제1독서는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가 유다마저도 함락시키려 침략한 위기의 순간을 들려줍니다.

"히즈키야는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주님 앞에 펼쳐 놓았다"(2열왕 19,14).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조롱과 협박 가득한 편지를 유다 임금은 주님께 보여 드립니다. 가련한 처지에 몰렸을 때 주님 발 앞에 온 몸을 던지는 것은 믿음을 지닌 가난한 이의 최선일 겁니다. 사실 산헤립은 유다를 모욕하기 전에 하느님을 모욕한 것이지요. 이제 이 일은 나라 대 나라, 인간 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과 무도한 산헤립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네가 나에게 바친 기도를 내가 들었다"(2열왕 19,20).

위기의 순간에 비참하고 가난한 처지에서 올린 진솔한 탄식와 애원을 주님께서 들어 주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거룩한 존재이자 진주인 당신 백성을 개들과 돼지들에게 던져 주지 않으시고, 손수 적들을 쳐서 그들을 구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하느님은 우리가 아무리 깨진 그릇처럼 쓸모 잃은 죄인이고 부족하다 해도 절대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분께 귀한 진주이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바치고라도 지켜내고 싶은 보물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님도 그런 보물이십니다. 그분 말씀과 가르침, 그분을 따르는 삶이 곧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그러니 한껏 사랑을 실천하고 희생과 인내로 좁은 문을 통과해놓고 하릴없이 일순간 개, 돼지들에게 그 귀한 보물을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도 온 힘을 다해 보물을 지켜내야 합니다.

주님의 귀한 진주요 거룩한 이신 벗님! 우리가 저마다 주님께 허락받아 간직해온 귀한 보물을 잘 간수하고 사랑으로 성장시키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