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말씀을 통해 성모님의 마음을 만나는 날입니다.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입당송).
미사를 여는 이 말씀은 마치 예수님을 임신하신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을 때 노래한 성모 찬송의 '한 줄 요약' 같습니다. 미사의 시작부터 기쁨과 환희가 펼쳐지는 것 같네요.
사실 우리는 "성모성심" 하면 성모 칠고를 상징하는 칼 일곱 개에 심장이 찔리신 성모님 성화를 먼저 떠올립니다.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한 그분의 인생이 고통 투성이였고, 인류의 어머니로서 무수한 자식 걱정에 근심이 그칠 날 없는 숙명을 보여 주는 것 같지요.
하지만, 평생 사랑을 보람으로 여기고 살아온 이들에게 인생을 묻는다면, 늘 고통과 비탄 뿐이었다고 푸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대개는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오르면서 사랑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소환해낼 것 같지 않나요? 마리아의 삶도 결코 평탄하지 않았고 침묵과 인내로 품어야 하는 슬픔과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지만, 교회가 마리아를 기념하며 기쁨을 노래하는 이유입니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루카 2,46)
복음은 예루살렘 축제 후 소년 예수님을 잃었던, 부모로선 십년 감수했을 사건을 들려줍니다. 외아들을 찾아 헤맨 사흘은 죽음과 같은 시간이었겠지요. 사흘은 마리아께서 먼 훗날 예수님을 무덤에 묻고 견뎌야 할 고통의 사흘을 예비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다행히 예수님을 찾긴 했는데, 예수님의 답변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요. 사흘 졸인 가슴에 사과는 커녕 영문 모를 당당함까지... 아마도 마리아는 어미로서 한계를 느끼셨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무엇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을까요? 고통? 조바심? 두려움? 괘씸함? 한계? ... 놀랍게도 오늘의 말씀은 제게 '그건 기쁨이었다'고 속삭이십니다. 마리아의 성심 안에 가득 찬, 티없이 깨끗한 기쁨을요.
누군가 인생의 위기를 물을 때, "아, 정말 진짜 힘들었어요. 죽을 뻔했다니까요" 하며 사건의 초반부터 구구절절 한숨과 눈물을 섞어가며 과정 위주로 들려주는 사람도 있고, "그러게요 분명 어려운 순간이었는데 그럭저럭 지나갔어요. 견딜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하며 승화시킨 결과를 나눠주는 사람도 있지요. 아마도 전자는 고통과 슬픔이, 후자는 감사와 기쁨이 마음속에 더 짙게 간직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속에 간직한 것이 그의 성격이 되고 인격이 되고 영성이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이사 61,10)
제1독서는 이렇듯 마리아의 기쁨을 예언합니다. 풍요하고 순탄해서도 아니고 누리며 대접 받는 삶이어서도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자격은 주님의 축복과 구원과 의로움을 믿고 그분께 온전히 자신을 던져 의탁한 이에게 부여되는 상급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벗님은 마음속에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지요. 녹록치 않은 삶에서도 마음속에서 기쁨을 길어올리시는 성모님처럼, 믿음과 의탁으로 마음속에 기쁨의 자리를 마련하시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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