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다음으로 큰 인물,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날입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 각자가 모태에서부터 받은 소명을 숙고하라고 초대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이사 49,1).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 도입부입니다. 주님의 종이 누구를 지칭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존재하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자연스레 세례자 요한을 떠올리게 됩니다.
소명은 생명과 함께 주어집니다. 마리아 태중의 예수님께서 그러셨고 엘리사벳 태중에서 세례자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이름은 존재의 방향과 목적을 담습니다 이름은 소명과 분리될 수 없지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루카 1,60).
아기의 할례식 때 늙은 산모 엘리사벳이 외칩니다. 이는 아기의 탄생 예고 때 천사가 전한 그대로입니다(루카 1,13 참조). 이를 알 리 없는 이웃과 친척들이 관습에 따라 아버지의 이름을 붙이려 했지만, 엘리사벳은 이를 완강히 거부합니다.
인생길에는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 용감히 "안 됩니다"를 외쳐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념이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라고 해야만 하지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분위기가 냉각되는 게 싫어서,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하면서 대충 되는 대로 따라가서는 안 되는 일이 분명히 있다는 말입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사도 13,25).
바오로의 증언을 통해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메시아를 고대해온 온 백성이 요한의 입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대에 찬 그들의 간절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요한은 주저없이 진실을 외칩니다.
"나는 ... 아니다."
사실 이는 그리 하기 쉬운 말이 아닙니다. 공동체 중심의 문화 속에 나고 자라면서 온 가족과 친지와 이웃의 기대치가 "너는 ... 이어야 한다"고 우리를 규정하기 일쑤니까요.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또 나는 진정 무엇을 바라는지, 내 삶을 보람과 의미로 채워줄 나의 소명은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획일적 꿈과 경쟁, 비교의 경기장에 세워진 우리는 무엇이 진짜 행복인지도 모르고 그저 달리고 또 달립니다.
"나는 ... 아니다."
목구멍에서 맴돌던 이 말을 처음 입밖으로 내놓을 때가 어쩌면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힘든 순간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작이 무섭지, 계속 하다 보면 자아는 점차 명료해집니다.
자기 인생에서 "아닌 것들"을 과감히 지워나가는 것도 진정한 개인 소명을 찾아가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무수한 꿈과 가능성과 이상들을 떠나보내는 과정에는 상실감과 아픔이 따르지만, 자신이 부여받은 하느님 모상, 영혼의 진짜 모습을 찾는 희열 또한 깊고 진하지요. 결국 우리는 하느님 앞에 "나"의 모습으로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생 쓰고 산 타인의 가면(假面)은 그분께도 나에게도 생소할 뿐이지요.
세례자 요한은 주님께서 오시기 전 그분의 길을 충실히 준비하고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예언자의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온 생애를 통해 모태에서부터 주님께 받은 소명을 채워나갔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벗님은 누구입니까?
주님은 벗님에게 어떤 소명을 부여하셨습니까?
그분은 벗님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십니까?
벗님의 소명을 살아가는데 가장 두렵고 부담스러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벗님의 소명이 완성되길 바라신다고 믿습니까?
세례자 요한, 엘리사벳, 즈카르야와 함께, 모태에서부터 벗님을 부르신 하느님의 뜻을 찾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꼭 무엇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모든 소명은 다 귀하고 가치롭고 아름답습니다. 한 조각만 잃어버려도 영영 완성될 수 없는 퍼즐(puzzle)처럼, 벗님만의 고유한 소명 하나가 빠지면 이 세상의 완성은 요원하답니다. 무엇이어도 좋으니 벗님 자신으로 활짝 꽃피어 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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