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의 새로운 절반을 시작하는 7월의 첫 날인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가 주님과의 관계를 "진짜진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으십니다.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마태 8,28).
그 지역의 골치거리인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서 사람들이 피해 다녀야 할 정도라고 하지요. 스스로 인간 사회의 관계성을 거부하는 그들이 스스로 무덤에서 나와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외부적으로 보면 예수님을 향하고 있고 거리도 점점 좁혀지고 있기는 한데, 그들의 외침은 정반대의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마태 8,29)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말은 인간 관계를 해치는 최악의 발언들 중 하나일 겁니다. 관계성의 거부는 서로를 어떤 책임도 의무도 없는 진공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관계 없음은 관심 없음이고 마음 없음이며 사랑 없음입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자신을 지으신 하느님과 관계가 있지요.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근본적 관계성을 거부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임이 명백합니다.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마태 8,34).
이 조용한 지방에서, 그들 스스로 자청하여 들어간 돼지떼가 모두 물에 빠져 죽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께 다가오지요. 그들의 방향성도 처음의 두 마귀 들린 이들과 같이 예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마태 8,34).
슬프게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고을 사람들 요구도 무덤 속에 살던 두 사람의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둘처럼 거칠게 외치지는 않았지만, 점잖고 외교적이며 완곡하고 세련된 어조로 예수님과의 관계를 거부한 것이지요. 떠나달라고...
적극적으로 악에 받친 태도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인 그들에게는 재산의 손실이 견딜 수 없는 불편과 분노를 초래한 것 같습니다. 구원받아 멀쩡해진 두 사람의 안위를 경축하기보다 잃어버린 재산이 아깝고 아쉬울 뿐이지요.
제1독서에서는 위선과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마음 없는 예식을 주님께서 얼마나 혐오하시는지 보여줍니다.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배척한다. 너희의 그 거룩한 집회를 반길 수 없다"(아모 5,21).
이스라엘의 축제와 집회는 주님과의 연관성 아래 설정되고 지켜져 왔습니다. 주님께서 개입하신 역사의 마디마디를 길이 기념하고 경축하기 위한 종교 예식이었으니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몸으로는 주님의 도성과 성전에 모이고, 율법이 정한 제물을 바치며, 노래와 연주로 주님을 찬미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보시는 주님은 그들이 외적으로 번지르르하게 만든 예식 이면에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 대한 소외와 무시, 착취와 거부가 깔려 있음을 놓치지 않으십니다.
그건 바로, 몸으로는 주님 앞에 나와서, 마음으로는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외치는 것과 다름 없지요. 오늘 복음 속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정을 세워라"(아모 5,15).
가난한 이들을 외면한 채 들고 오는 예물이나, 약자들의 기회를 도용해 얻은 재물이 주님께 기쁨이 될 리 없습니다. 차라리 렙톤 두 닢 어치도 못 되는 빈한한 제물이어도, 아니 아예 빈 손이어도 사랑과 경외심을 가득 담은 마음이 주님께 영광이 되고 찬미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이들은 주님과 "상관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난한 마음에는 '저는 정말 가난하고 부족한 죄인이지만, 당신밖에 아무도 없습니다. 바칠 게 없어도 당신을 사랑해서 나아왔으니, 보잘것없지만 받아주십시오' 하는 진정성이 흐릅니다. 이런 이는 주님과의 관계성 안으로 자신을 던집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봉헌을 결코 내치지 않으시지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신분이나 소속, 타이틀, 직함, 예식 참여 횟수나 헌금 액수 등 외적으로 주님을 향하는 것에 만족하는 이들이 아니지요. 몸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 정신과 기억, 온 존재로 주님과 단단히 연결된 결합체이리라 믿습니다.
몸과 마음이 한 목소리로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과 저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하고 외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일관적이고 통합된 존재로 주님 앞에 스스로 사랑의 예물이 되신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늘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조곤히 묵상해봅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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