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7월 3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dariaofs 2020. 7. 3. 05:45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그래도 괜찮아" 하시는 예수님의 속마음을 듣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요한 20,24).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마침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하필 그 순간에 말이죠... 스승의 죽음 이후 함께 힘겨워하던 동료 제자들이 절망과 두려움을 훌훌 벗고 기쁨과 생기를 찾아갈 때, 그는 여전히 십자가 아래, 무덤 속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저 듣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랑과 그리움 때문일 겁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요한 20,26)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또 다시 그들을 찾으십니다. 단순히 부활한 존재의 목격 증인을 만드시려는 것이라면 나머지 제자들에게 굳이 다시 당신을 보여 주실 이유는 없을 테지요. 오늘의 방문은 오로지 토마스를 위한 것입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요한 20,27).

예수님은 토마스가 아쉬워하며 항변할 때 마치 곁에 계셨던 것처럼 그의 요구를 하나 하나 기억해 들어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게 해야 네가 믿겠다면 당신은 어찌 해도 괜찮다는, 고통의 상처들이 다시 후벼지고 파헤쳐져도 좋다는 뜻입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토마스가 외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바로 자기 때문에 이 자리에 다시 오신 걸 알아차립니다. 그의 고백은 "이제야 당신의 부활을 믿습니다"라는 의미 이전에, "당신은 저를 사랑하시는 저의 주님이십니다!"라는 환호입니다. 이 순간 그를 점령한 것은 사랑이지요. 믿음은 그 사랑에 딸려 옵니다.

제1독서는 예수님과 우리의 결합을 건물에 비유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에페 2,21)

예수님께서 모퉁잇돌이시고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기초가 된 수려하고 튼튼하며 잘 생긴 건물이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후손인 우리가 그 건물을 이루어가고 있지요.

이 건물을 지탱하는 매개체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하느님 거처의 기운이고 영감이며 분위기입니다. 사랑은 믿음을 안고 성장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토마스 사도를 위해 다시 오신 주님께서 황송하옵게도 오늘 벗님에게도 다가오십니다. 우리의 부재와 한눈 팔기, 약한 믿음과 왜소한 사랑까지도 괜찮으니 원한다면 와서 직접 만져 보라고 속없이 당신을 내어주십니다. 그분은 믿음을 억지로 명령하지 않으시지요. 결국 사랑이 믿음을 견인해 오리라는 걸 아시니까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고 토마스 사도처럼 사랑에 찬 환성을 주님께 올리는 축제일 되시길 바랍니다. 다 이해할 순 없어도, 온전히 믿기 어려워도 사랑할 순 있답니다. 사랑이 이해와 믿음을 끌어줄 것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힘은 사랑입니다. 그렇게 믿는 벗님은 참 복되십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