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dariaofs 2020. 7. 6. 05:50

오늘 미사의 말씀 안에는 세 여자가 등장합니다. 복음 속, 죽었다 살아난 회장장의 딸, 예수님 옷자락에 손을 대어 치유된 혈루증 여인, 그리고 주님의 아내가 된 호세아서의 여인입니다. 이 여자들은 각자 나이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상이하지만, 모두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마태 9,18).

한 회당장이 예수님께 와서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다급했을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죽어가는 딸 곁을 지키다 속절없이 떠나보내고는 한달음에 예수님께 달려왔을 겁니다.

오늘 이 회당장은 하느님 아버지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사랑으로 창조해 애지중지 키운 자녀 이스라엘이 아버지에게서 오는 생명과 돌봄의 맥박을 놓치고 목숨을 잃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생명줄은 아버지와 나누는 사랑의 친교와 믿음이기에, 이 관계성의 소멸은 생명의 고갈이자 죽음일 겁니다.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마태 9,25).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보내시어 죽은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게 하십니다. 배반과 불충실로 꼬여버린 탯줄을 다시 풀어 사랑의 영이 흐르도록 하시는 겁니다. 화해와 용서로 아버지와 다시 연결되어 새생명이 주입된 이스라엘은 주님의 자비로 화색이 돌 것입니다. 되살아나는 겁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마태 9,20)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 또한 병들어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짐승의 피로 맺은 옛 계약의 자취가 계속 손쓸 겨를 없이 유실되어 날로 생명력을 잃어 갑니다. 치유를 위해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전부 쏟아 부은"(마르 5,26 참조) 그녀의 노력은 하느님이 아닌 다른 우상들에 매달려 탕진한 이스라엘의 믿음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그 기간이 열두 해라는 것은, 완전한 수만큼 때가 차서 예수님이 오신 것임을 드러냅니다.

"내가 저분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마태 9,21).

그런데 그 여인이 이제 구원의 확신을 가집니다. 혈루증은 육체적 고통과 쇠약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부정하다고 치부되어 영혼과 육신이 함께 죽어가는 병입니다. 열두 해 견딜 만큼 견디고 싸울 만큼 싸운 그녀가 새로 등장한 예수라는 치유자에게 희망을 겁니다. 전해 들은 그분의 언행으로 보아 율법을 따지며 자기를 단죄할 것 같지 않으니 용기를 내어 다가가지요. 부정한 여인이 먼저 손을 뻗어 예수님을 만집니다. 과연 믿음이 아니고서는 감행할 수 없는 용기일 것입니다.

당시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민중은 그분의 가르침과 행동에 희망을 걸었지요. 이 여인이 바로 새 희망으로 예수님께 다가가 감히 부정한 손을 내밀어 자비를 청하는 죄인들의 무리를 보여 줍니다. 그녀가 곧 새 이스라엘이고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며 '순결한 창녀'인 교회, 우리 모두를 가리킵니다.

제1독서는 사랑의 예언서인 호세아서의 아름다운 대목입니다.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호세 2,16).

주님께서 당신을 두고 다른 우상에게 몸과 마음을 바친 이스라엘에게 다시 사랑의 기회를 주십니다. 사랑의 반전이라 할 수 있지요.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호세 2,21).

하느님은 부정한 아내를 참아주고 사랑해 주시는 당신을 보여주시려 호세아 예언자에게 창녀와 결혼하라 하시고(호세 1,2-3 참조), 또 집을 나가 다시 창녀짓을 하던 그녀를 몸값까지 치르고 데려와 다시 살게 하십니다(호세 3,1-5 참조). 예언자는 전하는 말뿐 아니라 삶으로도 하느님을 가리켜 보여 주어야 했기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당신과 멀어진 이스라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신부로 맞으십니다. 그리고 이 계약은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나약한 믿음과 게으름, 곁눈질과 양다리로 절름거리며 서성이는 불결한 우리를 감내하시면서 당신 곁에서 신부의 자리를 치워버리지 않으십니다. 언젠가 새 이스라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묵시 21,2 참조) 당신 곁으로 되돌아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리십니다.

오늘 말씀 속 세 여인에게서 이스라엘을, 새로운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그리고 우리 자신을 봅니다.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 실존을 안고 질척대며 걷는 우리지만,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부족하고 부정한 제 몰골에 지쳐 주님께 손을 뻗길 주저하지 않는다면 구원은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벗님에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그러니 믿고 주님께 다가갑시다. 믿음 안에서 손을 뻗어 주님을 만지고 구원을 얻는 오늘 되시길 기도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