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에서는 '말씀과 우리의 상호성'을 이야기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먼저 제1독서에서 우리는 당신 말씀의 성취에 대한 주님의 확신을 듣습니다. 사람이야 '말 따로 행동 따로'이기 일쑤지만 하느님은 그러실 수 없습니다. 그분의 의지가 그분 입을 통해 발설되니까요. 말씀이 곧 그분 의지의 표현이고, 성취는 그 의지의 완성입니다. 그분의 의지와 말씀과 성취는 일체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이라는 씨앗을 받아들이는 네 종류의 토양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마태 13,4).
말씀을 듣는 영혼의 땅이 "길바닥"이 되지 않으려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정보나 이념이든 아무것이나 내 영혼을 함부로 짓밟고 다니며 점령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깨어서 내 땅의 주권, 그 영혼을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마태 13,5-6).
마찬가지로 내 영혼의 땅이 "돌밭"이 되지 않으려면 내 안에 가득한 돌들이 부서지고 갈아져 흙이 되어야 합니다. 그저 딱딱하고 물기 없는 돌인 채로는 생명의 말씀을 품기 어렵지요.
돌이 흙이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도 않고, 간단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시간도 걸리지요. 더 작아지고 미약해지고 무력해지는 과정을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산산이 부서지고 짓이겨지고 으깨진 흙이 되어서라도 말씀을 품을 수 있다면 인내와 견딤, 기다림은 가치가 있습니다.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마태 13,7).
말씀의 숨을 막는 가시덤불은 사실 내가 키우는 것입니다.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은 장마 뒤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잡풀처럼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지요. 영혼이 가시덤불 땅이 되지 않으려면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서로 덩굴을 엮기 전에 잘라내어야 합니다. 걱정과 유혹에 한치의 땅도 허용해서는 안 되지요.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마태 13,3).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닫고 열매 맺습니다. 들음과 깨달음과 실행이 하나입니다. 이는 그의 들으려는 '의지'와, 깨달음이라는 '앎'과, 열매 맺는 '사랑'이 일체일 때 가능합니다. 그는 이미 의지와 말씀과 완성이 하나인 주님을 닮았습니다.
우리 영혼이 말씀을 품기 적합한 좋은 땅으로 유지되려면, 지향의 일관성이 필요합니다. 바라는 바와 아는 바와 움직이는 바가 하나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 하나가 곧 주님의 뜻이지요. 이런 영혼이 지닌 통합성이 곧 인격적 영적 성숙의 표지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의 지향을 이야기합니다.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로마 8,23).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서 구원되기를 바랍니다. 이 진정한 원의에서 우리 지향이 들음과 깨달음과 실행으로 구체화되고 방향을 잡고 성장해 나가지요. 결국 우리의 구원은 말씀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마음 밭, 영혼의 토양을 잘 가꾸시는 한 주간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땅이 말씀을 잘 품어야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즐겨 이루실 것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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