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7월 14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dariaofs 2020. 7. 14. 05:56

오늘 미사의 말씀은 믿음으로 모든 일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의미를 찾으라고 촉구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마태 11,21)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성 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마태 11,23).

세 고을,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이 예수님께 혼쭐이 나고 있습니다. 당신 백성에게 축복을 베풀러 오신 예수님께서 지금은 추상같은 목소리로 그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각 도시의 이름을 마치 사람에게 하시듯 인격적 존재처럼 의인화해 부르십니다. 이 도시들은 예수님께서 특히 많은 기적을 베풀어 주신 곳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지요.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마태 11,21)
고을 안의 누군가에게 특별한 기적이 허락되는 건, 그것이 한 개인이나 그 집안만을 위한 특혜나 행운을 넘어서, 이를 보고 듣는 모든 이에게 표징이 되라는 뜻입니다. 치유받은 이를 보면서 자기 삶에서 감사를 끌어올리고, 되살아난 이를 보면서 희망을 굳히며, 구마를 보면서 하느님 주권을 찬양합니다. 특히 용서와 해방의 기적은 보는 이를 자기 성찰과 회개로 이끌지요. 이것이 기적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여야 합니다.

하나의 기적을 대하는 다수가 저마다 자기와의 연결 고리와 표징을 감지하고 의미를 끌어낸다면 먼저 그 자신이 변하고, 이어 그 고을도 변하고 결국 세상이 변해갈 것입니다. 기적에 대한 각자의 반응은 믿음의 깊이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오늘 예수님께서 세 고을들에게 가장 안타까워 하신 부분일 겁니다.

제1독서에서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침략으로 두려워 떠는 유다 임금 아하즈가 등장합니다.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7,4).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이사 7,4).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이사 7,7).

주 하느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보내시어 겁에 질린 아하즈를 위로하십니다. 이미 아람이 에프라임까지 진주한 터라 '임금과 백성의 마음이 바람 앞에 떠는 숲의 나무와 같았다.'고 성경 저자가 상황을 묘사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화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열왕기 하권과 역대기 하권을 잠시 들춰봅니다.

"아하즈를 포위하였지만 정복하지는 못하였다"(2열왕 16,5).

이것이 당장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기적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하즈는 이사야를 통한 하느님의 장담에 믿음을 두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하즈는 만군의 주님께 의지하기보다 아시리아에 기대기로 결심하지요. 처음에는 아시리아 임금이 아하즈를 돕는 듯 보이지만, 종국에는 아하즈가 자기에게 바친 모든 성전과 궁궐의 재물에도 불구하고 그를 도와주지 않고 외면합니다. 그런데도 이 과정에서 아하즈는 줄곧 주님을 배신하고 이방 신들을 유다 땅에 끌어들여 백성을 타락시키고 주님의 화를 돋웁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이사 7,9).

아하즈는 예언자까지 보내어 자기에게 경고하신 주님의 이 말씀을 새겨들었어야 했습니다. 동맹이나 군사력이 아닌, 지금 눈앞의 외세를 막아주신 만군의 주님을 의지했어야 했지요. 그에게 꼭 필요했던 말씀으로 힘을 주시던 그분께 마음을 돌렸어야 했습니다.

"믿지 않으면"
믿지 않는 이에게는 기적도 은총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남의 일, 가십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런 이는 그 기적과 은총을 제 것으로 할 수 없지요. 한 고을, 한 공동체에 베푸신 기적과 은총이 아무리 모두를 위한 것이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고 싶어도 믿지 않는 냉랭하고 무심한 마음이 미리 방어벽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온 세상에서 베풀어지는 기적과 표징은 나를 위한 것이 됩니다. 또 나에게 베푸신 은총과 선물도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 되지요. 그러니 매순간 사람과 사건을 통해 당신 뜻을 전하시는 기적과 표징들 안에서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 회개와 헌신의 열매를 맺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과 기적들을 되새겨 보면 어떨까요. 또 우리 공동체와 우리 나라에 베푸신 놀라운 기적들에 깊이 감사함으로써 우리 안에는 주님께서 가슴 미어지게 불행을 한탄하시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희망해 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