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여러 갈래로 등장합니다. 그 안에서 오늘 그분이 우리에게 정말로, 정말로 바라시는 게 무엇일까 머무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마태 10,42).
이 말씀은 낯선 곳으로 파견 받아 떠나는 제자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아무리 건장한 장정이어도 볼모지로 떠나는 초보 복음 선포자에게는 어느 것도 녹록치 않을 테니까요. 제자들은 스승 곁을 떠나는 순간, 미지의 고장에서 누군가의 관심과 친절로 새 힘을 얻을 "작은 이"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선교지에서 만나게 될 이들 중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가난하고 약하고 움츠러든 "작은 이들"을 찾아 눈길을 주고 다가갈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그분에게서 보아온 대로 말입니다. "작은 이"가 되어본 제자가 "작은 이"를 알아 봅니다.
"받아들이는"(마태 10,40-41)
작은 이들과 물 한 잔이라도 나누는 것은 그를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는 내가 베푼 친절에 상응하는 보상을 할 수조차 없는 처지일지 모르지만, 애초에 마음에 그런 계산 따위는 떠오르지조차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별 영양가 없어 보이는 가난하고 힘 없는 작은 이를 받아들이는 거라면 더 그렇지요. 그가 내 직계 가족이나 친족, 이해관계로 결속된 사람이 아닐 땐 더 그렇습니다.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마태 10,35).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깜짝 놀랄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가정의 화목을 경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혈연 지연 등 세속 인연들 너머로 시선을 돌리라 하시는 겁니다. 가족, 친인척, 내 편의 울타리 안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마음이 따뜻하고 생각이 바르더라도 울타리 밖의 작은 이들, 하느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가난한 이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은 당신 속마음을 밑바닥까지 드러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동안 잘 하느라고 올렸던 축제와 제사, 제물들을 "물렸다"고, "싫다"고, "견딜 수 없다"고, "지쳤다"고 솔직히 토로하십니다. 참다 참다 내뱉는 적나라한 표현 안에는 혐오감까지 그대로 묻어납니다. 신과 인간을 막론하고 마음 없는 예의의 위선이 상대를 얼마나 슬프고 아프고 괴롭게 하는지 여실히 드러납니다.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이사 1,17).
주님의 말씀이 인간의 위선에 대한 역겨움의 토로로 끝나지 않고 주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것으로 귀결되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적어도 그분이 왜 언짢아 하시는지, 무엇을 바라시는지 깨달아 노력할 여지가 있으니까요.
주님께서 언급하신 "억압받는 이, 고아, 과부"는 고통 받는 약자들, 하느님 외에는 보호자가 없는 이들을 대변합니다. 복음 속 "작은 이들"과도 연결이 되지요. 그들은 세상에서 기댈 곳 없는, 온갖 특혜에서 제외된, 자기 인권과 행복권에 대해 실낱같은 목소리조차 잃어버린 이들이지만 주님의 제자들이고 그들 자신이 곧 주님의 현존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그들을 받아들이는 이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님은 가장 작은 이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십니다. "내가 바로 그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세속적 성공 보루를 갖지 못한 작은 이들은 물 한 잔에도 크게 감사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이 올리는 감사와 축복의 기도는 구름을 뚫고, 하느님 궛가를 적시어 그분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마태 10,42)이라고 힘주어 약속하십니다.
자,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예식 참여가 주님께서 진정 기뻐하실 예물이 되려면 작은 이들과 함께여야 한다는 진실을 배운 겁니다.
내가 속한 가족, 공동체, 이웃, 사회, 국가, 인류, 모든 피조물 안에서 누가 "작은 이"인지 우리 마음은 모르지 않지요. 그들에게 시원한 물 한 잔, 따뜻한 안부, 진심어린 격려 한 마디 건네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로써 우리는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미리 축하드립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렇게 쉽습니다. 그 하느님 만나시는 기쁨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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