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진정한 하느님의 강함이 무엇인지 배웁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여러 표현으로 풀어서 들려 줍니다.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지혜 12,18).
모든 힘은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힘의 주인이고 원천이시지요. 인간 세상에서는 힘을 가진 자가 자기 부귀영화를 위해 그 힘을 약자에게 함부로 휘두르기 일쑤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힘을 더 사랑하고 낮추고 약해지는데 쓰십니다.
이것이 부족한 죄인인 우리가 하느님께 번번이 자비를 청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힘을 사랑과 용서에 쓰는 분이시니까요.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도 "의인은 인자해야 한다"(지혜 12,19)고 요구하십니다. 인자하고 너그럽고 자상한 것은 약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힘을 닮은 것입니다. 더 많이 포용하고 낮추고 용서할수록 사랑에 더 강한 사람입니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로마 8,26).
그래서 우리는 나약함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감출 필요는 더더욱 없지요. 주님께서 이미 다 아시고 그에 맞는 도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약함은 자신을 낮추어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길일지 모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세 개의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가라지와 뒤섞여 자라는 밀", "겨자씨", "누룩"입니다. 저마다 특징이 조금씩 다르지만 미소함에서 성숙으로,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부족함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표상을 공통으로 품고 있지요.
하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실재입니다. 우리는 이미 시작은 되었으나 아직은 충만함에 도달하지 않은 하늘 나라를 지나고 있는 순례자들이지요. 이 세상에는, 그리고 우리 안에는 주님께서 사랑과 기대를 듬뿍 담아 뿌리신 밀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지만, 악한 자가 몰래 뿌려놓은 음습하고 불결한 가라지도 더불어 집요하게 뿌리를 엮고 줄기를 밀어올리는 중입니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13,30).
우리 마음 같아서는 가라지를 죄다 싹 뽑아 일망타진하고 싶은데 주님이 만류하십니다. 그분은 행여 성급하고 서툰 손놀림에 밀 한 가닥이라도 다칠까 염려하시는 겁니다. 그분께 무성히 자라는 가라지 정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밀이 중요하실 뿐이지요. 가라지를 없애지 못해 안달하며 자꾸 신경을 빼앗기는 건 오히려 자기의 뻔한 약함과 죄악을 못 견디는 교만한 우리입니다.
"약해도 괜찮아,
부족해도 괜찮아,
죄인이어도 괜찮아"
온갖 강함의 주인이시며 전능하신 하느님의 마음에서 이 속삭임을 엿듣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완벽하길 바라지 않으십니다. 완전한 분은 그분 한 분으로 족하니까요. 또 주님은 우리에게 강함을 요구하시지도 않습니다. 온갖 강함의 주인이신 주님이 우리 때문에 선택하신 건은 오히려 약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지금은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시간입니다. 내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세상에서 밀과 가라지의 공존을 참아주고 인내하며 동행하는 너그러움, 관대함, 인자함, 즉 강한 사랑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니 언젠가 하늘 나라의 완성에 다다라 그분께서 손수 하실 때까지 이 나약함과 부족함, 불결함을 견디어 나가야겠지요.
그렇지만 벗님 자신에게서, 세상에서 너무 가라지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섞인 상태여도 지금 주님의 눈에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니까요. 미완의 과정 안에서 사랑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강하고도 약한 벗님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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