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9월 7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dariaofs 2020. 9. 7. 12:38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 내면을 돌아보게 이끄십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 지켜보고 있었다."(루카 6,7)

시간적 배경은 안식일, 공간적 배경은 회당입니다. 마침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계십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예수님의 일탈 행위입니다. 장애를 지니고 불편하게 살아가는 동족 따위는 그들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루카 6,8)

예수님은 그들의 속셈을 아십니다. 그들의 속은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말한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1코린 5,8)으로 썩어가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아프십니다. 그들이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작 예수님을 잡기 위한 올가미나 덫, 인질로 도구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울 만큼 배우고, 존경 받을 만큼 받는 이들이니 그 심보가 더 안타까우셨을 겁니다.

예수님은 오른손이 오그라든 이에 대해서도 연민이 가득하십니다. 마침 오늘 치유자 예수님이 이 회당에 들어와 가르치시니 운이 좋으면 자신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칫 오늘 이 자리에서 자기 때문에 예수님이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걱정되기도 했을 겁니다. 그는 이 양가 감정을 오가며 최대한 숨죽여 회중 가운데 있었을 겁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서라."(루카 6,8)
"손을 뻗어라."(루카 6,10)

사실 그에게 오른손은 늘 감추고 싶은 치부였겠지요. 제일 쓸모가 큰 지체인데도 제 구실을 못하니 자꾸 퇴화되어 갔을 겁니다. 육신의 질병을 죄의 대가나 하느님의 징벌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 했겠지요.

그런 그를 예수님은 일어서라고, 가운데에 서라고, 손을 뻗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분의 요구에는 감추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치유받을 이도 숨을 이유가 없습니다. 음흉하고 간교한 속셈을 잔뜩 품고 있는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과 큰 대조를 이루는 대목입니다.

예수님 역시 숨을 마음이 없으십니다. 숨어서 속으로 슬쩍 치유해 주시지 않습니다. 혹시 다음에 안식일이 아닐 때 만나면 그때 보자고 미루지도 않으시지요. 오늘의 기적이 당신을 위험에 빠뜨릴 줄 모르시지 않지만 물러서지 않으시는 겁니다.

예수님께는 한 사람의 치유가 "좋은 일"일 뿐만 아니라 "목숨을 구하는 행위"입니다. 당장 생명에 위협을 받는 응급 상황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희생으로 그가 누릴 온전함이 안식일 규정을 앞서지요. 아니, 예수님께는 가난하고 아프고 고통 받고 보잘것없는 한 사람의 회복이 곧 안식일 정신의 완성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인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불륜을 꾸짖으며, 보다 과감한 조치를 권합니다. 이유는 불륜을 저지른 이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그런 "악"을 공동체에서 치워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1코린 5,7)

누룩은 발효로 빵을 부풀리는 선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부패를 촉진하는 역할도 합니다. 사도는 한 사람에게 스며들어와서 결국 그 존재 전체를, 공동체 전체를 썩게 만들 수 있는 상징으로 누룩의 비유를 든 것입니다.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1코린 5,8)

"악의와 사악의 누룩"을 완전히 빼 버린, 누룩 없는 빵의 축제가 곧 파스카 축제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그 주인공이 되시고, 당신을 누룩 없는 빵으로 내어 주신 새 계약의 축제지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순결하고 진실되기를 바라십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 충실하고 선한 마음, 거짓 없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저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생긴 상처와 어둠, 이기심이 마음 안에서 속셈을 만들고 왜곡을 일으키며 자신과 타인에게 올가미가 되기도 합니다. 치유를 바라면서도 두려움에 숨게도 만들지요.

그냥 방치하면 자기 이익과 신념에 사로잡혀 타인의 온전함과 행복을 차선으로 내쳐 버리는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먼저 자신의 마음 속 불결한 누룩을 치워 버리고, 공동체와 사회의 스며든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에 대해서도 분별하며 깨어 경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쏟아지는 정보와 자기 주장과 비난의 홍수로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세상 안에서 무엇을 신뢰하고 따라야 할지 헷갈릴 때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가만히 머무르다 보면 예수님 마음이 원하시는 곳에 우리 마음도 가닿을 것이니, 오늘 치유 받은 이처럼 그분 말씀에 순종하며 그대로 따르면 될 것입니다.

"다시 성하여졌다."(루카 6,10)

훼손되고 약해지고 무너진 모든 것이 다시 성해지기를 마음 모아 기도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우리의 기도에 실상 많은 것이 달려있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