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9월 9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dariaofs 2020. 9. 9. 05:19

오늘 미사의 말씀은 진정한 행복을 일러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 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네 가지 행복과 네 가지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고, 미움 받는 이들에게 행복하다고 하시고,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고, 늘 호평 받는 사람들에게 불행하다고 하시지요. 솔직히 받아들이기에 그리 만만한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 질서와 상반되기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가난하되 부를 시기하지 않고, 굶주리되 남을 해치지 않으며, 제 아픔에 울면서도 타인을 연민하고, 박해 받으면서도 주님만을 향할 수 있는 이는 행복하다고요. 과연 그런 이는 행복합니다.

또 부유한데 만족을 모르고, 배부르면서도 남을 착취하며, 남의 눈물은 아랑곳없이 저만 웃고 즐기면 되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으려 하느님 시선은 무시하는 이들은 제아무리 세상이 인정하고 부와 권력과 명예를 보장한들 진정한 행복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네요.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혼인 문제를 들어 때를 준비하는 자세에 대해 가르칩니다.

"... 있는 사람은 ... 없는 사람처럼 ... 사십시오."(1코린 7,29)

사도는 혼인과 독신, 웃음과 울음, 기쁨과 슬픔, 소유와 이용 등에 대해 무엇이 좋다고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보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말라고 권고하지요.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기에, 영과 육의 질서와 균형은 영성 생활의 화두입니다. 세상 것에 대한 일방적 선호와 집착, 취향과 갈망은 한 존재의 중심추가 물질에 쏠려 있음을 반증하지요. 사도 바오로는 믿는 모든 이가 마지막 날에 자유롭고 홀가분한 상태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코린 7,31 참조)

"네 백성, 네 아버지 집을 잊어버려라. ... 임금님은 너의 주인이시니, 그분 앞에 엎드려라."(화답송)

시편 저자는 지상 임금의 혼인식 장면을 들어, 결정적인 하느님 왕국의 도래와, 신부로 단장한 아름다운 영혼과 신랑이신 주님과의 해후를 묘사합니다. 세상 애착과 연줄과 욕망을 끊고(잊어버리고), 영원한 주인이신 분께 승복함으로써(엎드림으로써) 온전히 그분의 소유가 됨으로써 혼인 잔치는 절정을 향해 갑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곳은 하느님 곁에 마련된 우리의 본향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지상에서 주어진 제 십자가를 지고 순례의 여정을 걸어갑니다.

그렇다고 내세만 바라보고 기대하면서 현세를 아무렇게나 지나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은 작은 일에 충실한 종을 "착하고 성실한 종"이라 칭찬하시며 당신의 큰 일을 맡기실 것이니까요.
(마태 25,21 참조)

오늘의 말씀에서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 독서와 화답송 안에 담긴 속뜻은, 일차적으로 현세에서 주어진 삶에 성실히 임하되, 그 결과와 열매를 현세에서 기대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주님의 바람이 들어 있는 듯합니다. 결국 우리가 돌고 돌아 마침내 정착할 곳은 본향의 복된 자리이니, 하느님 나라의 아름다움과 충만함, 기쁨을 관상하며 현세의 장벽과 광야와 어둠 속을 의연히 걸어가라는 격려일 것입니다.

현세와 내세를 흑백논리로 갈라, 극과 극에 놓아버리고 어느 하나에만 집착하면 종교가 자칫 사회 불안과 위험을 초래하는 이단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현세는 내세의 행복을 위해 주님께서 각자에게 알맞게 마련해 주신 환경이니,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며 이웃과 더불어 힘껏 살아내야 합니다.

"행복하여라, 부유함에 감사하며 나누는 이!
행복하여라, 자기 배부름을 덜어 타인을 배불리는 이!
행복하여라, 우는 이에게 웃을 일을 선사하는 이!
행복하여라, 가장 낮은 곳에 귀기울여 하느님 칭찬을 듣는 이!"

사랑하는 벗님! 오늘 주님은 이렇듯 행복을 더 큰 행복으로, 불행을 반전의 행복으로 끌어 주십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충실히 살며 하느님 나라를 자유로이 관상하는 복된 이들입니다. 그런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