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아버지를, 예수님을 닮으라는 촉구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27)
빙 둘러서 말씀하실 것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십니다. 사랑을 감정의 범주로만 생각한다면 사랑은 명령이 될 수 없지만, 의지와 지향의 일이라면 영 불가능하지 않지요.
그래서 오늘의 사랑 명령은 우리에게 호의적이고 친절하며 다정하고 유익을 주는 이들을 대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은 아버지의 자녀가 아니어도, 극악무도한 죄인이어도 누구나 가능한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의 사랑은 아직 온전히 사랑이 아닙니다. 그저 본능적 교류나 순반응, 주고받는 교환의 사랑, 미완의 사랑, 반쪽의 사랑입니다.
원래 사랑의 범주 안에는 우리를 미워하고 저주하며 학대하는 자들, 뺨을 때려 모욕하고 빼앗고 갚지 않는 자들, 은혜를 모르는 악한 자들에 대한 사랑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기까지 가야 완전하신 아버지처럼, 자비하신 아버지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람 사이에서 당한 일들은 제 아무리 힘써 용서하려고 애써도 어딘가 자국이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파편처럼 삶의 구석구석에 박힌 상처와 아픔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고통이 된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머리나 자기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믿음이 약한 형제, 양심이 불안정한 형제들을 배려해 행동하라고 이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1코린 8,11)
사도는 믿음이 깊고 하느님에 대한 앎이 충만한 이들의 자유로운 행동이 자칫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좋지 않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 말씀은 신앙과 양심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한 형제들과 더불어, 본능적으로 우리 호의의 대상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원수들에게까지 확대되어 적용할 수 있는 권고일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도 우리 주님께서 돌아가셨다면, 그 역시 우리 사랑의 대상인 형제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1코린 8,3)
하느님에게서 받은 믿음과 사랑을 자유로이 한껏 발휘하며 살기에도 모자랄 것 같은데, 믿음이 약한 이들까지 고려해서 조심조심 눈치보며 사는 건 따분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나를 힘들게 하는 이에게 나만 줄곧 참아주고, 웃어주고, 손해 보며 사랑한들 누가 알아주기나 하냐고 항변하고 싶을 수도 있지요.
하느님께서 알아주십니다! 그분이 다 아십니다. 그리고 더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시지요. 처음에 발동을 걸기가 어려울 뿐, 한번 시작되면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고 날개 달아 올려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화답송)
시편 저자는 용기를 다해 사랑하는 우리의 숨은 희생과 눈물, 인내와 겸손을 주님께서 잘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이 앎이 곧 사랑이지요. 우리의 부서질듯 약하고 뒤집어질듯 아슬아슬한 미완의 사랑을 주님은 이미 사랑의 완성태로 보고 계십니다.
내게 어려움을 주는 이들을 사랑하기 어렵다면 처음은 보상적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심판받지 않으려면, 내가 단죄받지 않으려면, 내가 용서받으려면 내가 먼저 그리 하면 된다고요.
그렇게 하다보면 사랑에도 구력이 붙고 가속도도 생깁니다. 보상적 동기는 사랑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굳이 기억도 나지 않게 되지요. 사랑하는 주님을 닮아보려 애쓰면서 사랑이 되고, 자비하신 그분을 닮아보려 애쓰면서 자비가 되어갑니다. 이 과정이 어느새 우리를 사랑이 되게 할 겁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리라."(복음 환호송)
사랑은 사랑하면서 배우고, 그 과정에서 완성됩니다. 본성으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이까지 신앙으로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을 닮아 사랑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그의 존재 안에 머무르시는 하느님이 그를 통해 드러나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형제로, 이웃으로 두고 있으니 행복합니다. 벗님 여러분이 제게, 우리는 서로에게 이미 사랑이고 축복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0년 9월 11일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0) | 2020.09.11 |
|---|---|
|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86. 사제직 (「가톨릭 교회 교리서 893, 897~903항) (0) | 2020.09.11 |
| 2020년 9월 9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0) | 2020.09.09 |
| 2020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0) | 2020.09.08 |
| 2020년 9월 7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0) | 2020.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