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새로움에 마음을 활짝 열라고 초대하십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루카 5,33)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비아냥거립니다. 설마 "먹고 마시기만" 했겠습니까만,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자기들에 비해 예수님의 무리가 좀 허술해 보였는지 허를 찔러 보려는 듯합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루카 5,34)
예수님은 바리사이, 율법 학자들이 살아가는 "때"와 지금 당신 제자들이 살아가는 "때"의 차이를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백성은 여전히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연장선 안에 있지만, 새 계약의 백성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함께 주님의 현존을 누리는 "혼인 잔치" 안에 있습니다. 새 시대에는 그에 맞는 새로운 질서와 적용이 필요하지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38)
지금은 새 포도주의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남녀의 결합과 일치를 축하하는 혼인 잔치에서 신랑 신부는 물론 친구들과 하객들을 사랑의 흥으로 취하게 만드는 새 포도주가 신랑의 심장에서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돌판에 새겨지고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을 준수하면서 충실성을 증거하던 옛 계약이, 말씀이신 예수님을 맞이하여 믿고 뒤따름으로써 그분과 하나 되는 새 계약으로 건너갑니다. 단절이 아니라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맺은 옛 계약의 골자인 사랑을 희생 제사로 완성하시어 새 계약을 이루십니다.
새 포도주가 헌 가죽 부대에 담기면 둘 다 훼손될 것이 자명합니다. 새 포도주에는 그래서 새 가죽 부대가 필요하지요. 예수님은 옛 포도주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또 헌 가죽 부대도 보존되어야 함을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옛 것과 새 것의 구분, 분열이 아니라, 서로를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유대와 포용을 바라시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습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심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1코린 4,5)
사도는 주님을 앞질러 심판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에 언젠가 맞이할 심판이 두렵기는 하지만, 자칫 관습이나 규범의 타성에 젖은 심판은 하느님과 방향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예정된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 단죄의 심판에서 사랑의 심판으로 건너갔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1코린 4,5)
사도 바오로는 심판을 이야기하면서 '단죄'가 아닌 "칭찬"이라는 키워드를 끌어올립니다. 철저한 바리사이 유다인이었던 사도 바오로의 의식 전환이 선명히 드러나는 대목 같습니다.
사실 우리도 흔히 "심판"이라는 말을, 자신과 타인의 못마땅하고 불합리한 부분의 성토와 연결시킵니다. 삶을 셈 바쳐야 하는 마지막 "심판" 역시 생전에 지은 죄와 잘못을 먼저 떠올리며 마땅히 치러야 하는 쓰디쓴 대가라고 여기기 일쑤지요.
그런데 새 계약의 백성인 우리에게 "심판"은 사랑의 심판입니다. 사랑의 희생으로 계약을 완성하신 예수님께서 모든 심판의 기준을 사랑으로 바꾸셨지요. 우리는 그간 잘못한 무엇 때문에 내쳐지기 이전에 연민하고 희생하고 내어준 사랑 때문에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새 포도주, 새 가죽 부대로의 전환 덕분입니다.
그러니 새 포도주이신 신랑 예수님의 사랑에 취해 우리도 더 사랑하려고 노력합시다. 더, 더, 더 사랑하다보면 죄도 덜 짓고 미움도 작아지고 악에서도 멀어집니다. 주님과 고이 가꾸어 가는 사랑이 더 아름답게 자랄수록 그 사랑을 훼손하고 싶지 않아서도 그렇고, 또 악해질 능력도 점차 상실하게 되어 그럴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원하건 원치 않건 새로운 시대를 실제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익숙했던 모임, 만남, 나눔, 신앙활동, 직접 봉사 등이 서로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비대면과 접촉 자제, 집합 금지 등등의 거리두기로 바뀌었지요. 외적 활동 안에서 신앙인의 정체성을 찾던 이들에게는 큰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내면의 성전을 더 가꾸고, 타성에 젖은 성사생활이 아닌,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뜨거운 예배로 전환하라는 초대가 아닐까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자선과 희사도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서 실천하고 연대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옛 포도주의 향수에 젖어 우울해하기보다, 새 포도주에 담긴 새 향기와 새 맛을 누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영혼의 여정을 시작합시다. 코로나19로 인한 전환은 이제 시작이지만, 다행히 우리는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혼인 잔치 안에 있고 또 새 포도주가 넘쳐 흐릅니다.
이 말씀을 만나는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위해 뜨거운 기도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다가오는 새로움을 헤쳐 나갑시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힘 내십시오. 그리고 서품기념일을 맞는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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