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dariaofs 2020. 9. 2. 05:13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에게서 파견 받은 이들이 가져야 할 기본 자세를 보여 주십니다.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의 동선이 무척 분주하고 활동적으로 이어집니다. "회당"(루카 4,38)에서 "회당"(루카 4,44)으로 마무리되는 여정 안에는, 개인 시몬의 집, 군중들 틈, 밖의 외딴곳, 다시 군중, 그리고 여러 회당으로 연결되는 숨가쁜 움직임들이 들어있지요. 하느님에게서 파견된 이가 그 사명을 수행하면서 겪는 사도직의 리듬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루카 4,40)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어 고쳐주십니다. 단 한 번의 말씀으로도 충분히 공동 치유가 가능하실 터이지만, 대개 육신의 치유는 마음의 위로가 병행될 때 진정한 회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 마음을 기울여 어루만져 주시는 듯합니다.

"외딴곳"(루카 4,42)

해 질 무렵부터 몰려 든 이들에게 치유와 구마를 베푸시며 분주한 저녁 시간을 보내신 예수님께서 새벽에 기도하러 외딴곳을 찾으십니다. 하느님과 독대하며 보내는 사랑의 시간은 예수님이 즐기시는 회복과 일치의 시간입니다. 파견된 이들은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더 많은 활동을 하는 것과 비례해 더 많이 외딴곳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활동의 중심은 하느님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루카 4,42)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한 복음 속 군중은 무척 놀라고 또 행복했을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영원히 자기들과 함께 계시면 더이상 불행이나 고통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을 터입니다. 이른 새벽 외딴곳으로 가신 예수님을 찾아 헤매던 짦은 공백의 시간 동안 아마 그들의 불안과 조급함이 더 증폭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분열과 편가르기를 일삼는 코린토 신자들을 꾸짖는 사도 바오로의 엄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1코린 3,5)

아폴로 편이니 바오로 편이니 하며 갈라지는 교회의 모습에 바오로는 단호히 대응합니다. 이는 "육적인 사람"이 "시기와 싸움"을 일삼으며 "인간적인 방식대로 살아가는" 모습이지요.(1코린 3,3 참조) 바오로가 특별히 애정을 다하고 심혈을 기울여 이끈 코린토 교회지만, 이런 모습은 "영적인 사람, 하느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이"의 모습과 분명 거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1코린 3,7)

바오로도 아폴로도 주님의 사업을 위해 선택되어 파견된 훌륭한 사도들임에 틀림없지만, 각각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통해 교회 분열이 야기된다면 하느님에게서 오는 힘이 아님은 명백하지요. 오로지 모든 중심은 사랑과 구원이라는 당신 뜻을 이루시려고 일꾼을 파견하시는 하느님께 있어야 합니다.

복음 속 군중이 예수님을 붙들었듯이, 어쩌면 코린토 교회의 사람들도 제 뜻대로 무리지어 구성한 한 분파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권능을 독점해 향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것이라면 다 움켜쥐고 싶어하는, 바오로의 표현대로 육적인 사람이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모습일 겁니다.

은총이나 직분, 권한의 사유화는 분열로 이어져 차별을 낳고, 불일치를 촉진해, 와해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연대와 협력, 일치를 지향하는 공동체 모습에 역행하는 숨은 악의 얼굴이지요.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루카 4,43)

모두가 당신을 추종하기 위해 모여 든 이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냉정하리만치 담백합니다. 인간적 욕망이나 공명심이 티끌만큼도 묻어 있지 않지요. 그분은 당신이 파견된 목적, 곧 아버지 뜻이라는 중심과 원칙에 충실하실 뿐입니다. 후일 이 모습을 바오로도 따랐고 아폴로도 따랐을 것이지요. 이제 코린토 신자들과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 할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예수님처럼 또 바오로처럼 우리도 자신을 있게 하시고 "지금 여기에" 파견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중심을 둘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파견된 이는 파견하신 분보다 나을 수 없으니, 사실 교만할 일도 우쭐할 일도 없지요. 또 자신과 같은 죄인에게까지 쏟아주신 주님의 무한한 신뢰와 자비를 깨달으면, 그분의 사랑이 타인에게, 원수에게까지 흘러가는 것을 아쉬워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1코린 3,9)

이 말씀 안에 깊이 깊이 머무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옷깃을 여미게도 하고, 가슴을 쭉 펴게도 하며, 주변의 이웃을 더 사랑하고 싶어지게 만드시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