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dariaofs 2020. 8. 29. 05:45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예수님이 등장하시지 않는데, 행간마다 예수님이 느껴집니다.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예레 1,17)

예레미야는 박해받는 참 예언자의 전형입니다. 그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집권 세력의 구미에 맞지 않거나 왕궁 예언자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조롱 당하고 죽음의 위험을 겪었지요. 바빌론의 압박과 맞물린 민감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이미 백성들은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마음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예레미야를 격려하십니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되어 그분의 뜻을 전하는 이는 신념을 잃어서도 기가 죽어서도 안됩니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예레 1,19)

하느님의 현존은 예언자가 좋건 싫건 그를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요새 성읍, 쇠기둥, 청동 벽"(예레 1,18)처럼 강하고 든든히 곁을 지켜 주시는 하느님 덕분에 예언자는 불보듯 뻔한 백성의 거부와 조롱, 모욕의 포화 속을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이 길의 끝이 죽음과 연결되더라도 그렇게 하지요.

"당신의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속에서부터 당신의 저의 보호자시옵니다."(화답송)

이 시편 대목은 예레미야의 이야기기도 하고, 오늘 기념하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기도 하며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 이야기기도 하지요.

창조 때부터 시작된 하느님의 한결같은 관심과 인내로운 동반을 관상합니다. 태초부터 우리를 염두에 두시고, 어머니 배속에서 우리를 불러 보호하신 분, 그분의 눈길은 지금 여기까지 우리를 놓치지 않고 감싸주셨습니다. 그분의 기다림과 숙고, 끈기와 기대는 "반석, 산성, 바위, 보루"(화답송)처럼 든든히 우리를 지켜오셨지요.

"의롭고 거룩한 사람"(마르 6,20)

세례자 요한 역시 주님의 돌봄 속에 태어나 그분의 보살핌 속에 자라납니다(루카 1,66 참조). 악인인 헤로데에게조차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받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닦고 백성을 준비시킨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입니다.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마르 6,25)

요한은 헤로데에게 직언한 대가로 결국 참 예언자들이 걸어간 길을 갑니다. 한 소녀의 춤값이 그의 목숨값이 되었지요.

악이 움직이는 과정을 바라봅니다. "곧", "서둘러", "당장"... 악은 자기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해 쾌락을 이용할뿐만 아니라 즉흥적이고 경솔하며 성급합니다. 숙고 없이 누군가의 피와 목숨으로 탐욕을 채우지요. 우리 일생 내내 발맞춰 걸어 주셨던 하느님의 기다림, 인내, 성실하고 고요한 동반과는 정반대로 거칠고 폭력적입니다.

오늘 말씀 속 예레미야의 고뇌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참 예언자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세상이 많이 어지럽습니다. 늘 세상을 위해, 인류를 위해, 모든 피조물을 위해 기도하지만, 전방위적으로 불신과 폭력, 이기주의와 죽음의 위협이 난무하는 이때, 우리의 기도가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우리 모두 미약한 존재지만 사랑이신 하느님의 뜻을 두려움 없이, 고요하지만 의롭게, 선하고 진실되게 확산시키는 참 예언자의 소명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이기심과 두려움에 압도된 이들이 양심에 등돌리지 않기를, 공동선과 인류의 유익을 위해 선한 의지를 되찾고 협력할 수 있기를 마음 모아 기도합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악은 선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수난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