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 기념일

dariaofs 2020. 8. 28. 05:36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을 일러 주십니다.

"저마다 등을 들고"(마태 25,1)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들이 "저마다" 등을 들고 있습니다. 등은 각자가 지닌 자기만의 것입니다. 등에 불을 켜는 일도 각자에게 달려 있지요.

"신랑이 늦어지자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마태 25,5)

다섯을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기본적으로 다들 동일한 인간적 조건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적 한계와 나약함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지요.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마태 25,7)

이윽고 신랑이 오자 처녀들은 일어나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제일 먼저 챙겨야 할 것이 바로 각자 자기의 등입니다. 복음 사가는 "등"을 언급하면서 "저마다"라고 반복하지요. 이 "등"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노력은 함께 공유하거나 차용할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무엇입니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마태 15,10)

기름이 떨어져 등이 꺼져가던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 신랑이 오고, 혼인 잔치의 문은 닫힙니다. 여기서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나눔이나 희사의 정신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말씀의 줄기를 놓치는 실수일 겁니다. "등"을 밝히는 기름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공유나 차용이 불가능한 저마다의 무엇이니까요.

오늘 복음 대목에서 구원의 공동체성과 개별성을 묵상해 봅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서 세례를 받고 계명을 지키며 하느님 자녀로서 살아가도록 초대받은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저마다 기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등"을 선물로 받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비유 속 처녀들처럼 슬기롭건 어리석건 저마다 "등"을 지니고 천상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신랑이신 주님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기름"은 신랑이신 주님과 신부인 "나"의 만남과 결합을 상징하는 "불"을 지피고 꺼지지 않게 유지하는 소중한 자원입니다. 그런데 내 등불은 온전히 내 기름, 내가 마련한 기름으로만 타올라야 하지요. 아무리 급해도 얻거나 빌릴 수 없습니다. 온 생애를 통과하며 차곡차곡 쌓아 간직해 온, 오로지 나만이 그분께 드릴 수 있는 선물입니다.

"우리 문간에는 온갖 맛깔스런 과일들이 있는데 햇것도 있고 묵은 것도 있어요. 이 모두 내가 당신을 위하여 간직해온 것이랍니다."(아가 7,14)

아가의 저자는 연인을 위해 그동안 간직해 온 것들을 펼쳐보이는 신부의 수줍고도 벅찬 사랑을 노래합니다. 오늘 복음 속 "기름"처럼 고유하고 독점적인 사랑의 징표와도 같을 겁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사랑하고 따르는 그리스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들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1코린 1,23)

당시 사람들에게는 십자가 형틀에 달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사형수를 믿고 따르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스캔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보여 주는 이웃 사랑이나 나눔, 희생, 순교 등의 모습은 세상 논리와 결도 다르고 방향도 다른 "어리석음"에 불과했지요.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24-25)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돈과 물질과 편리함과 쾌락이 우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내세에 펼쳐질 영원한 생명에 희망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세속 사람들 눈에는 걸림돌이고 어리석음입니다. 돈과 인맥과 스펙을 모으느라 영혼의 등불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테니까요.

오늘 비유 속 슬기로운 처녀들은 저마다의 삶에서 사랑의 기름을 차곡차곡 모아온 이들이 아닐까 합니다. 그들은 세상이 뭐라 하든 기도와 자선과 단식으로, 희생과 나눔과 사랑으로 자기 등에 불을 밝히며 살아온 이들일 겁니다. 신랑을 기다리다 비록 육신의 나약함으로 졸기도 하고 잠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분을 위해 일생을 걸쳐 마련한 소중한 선물을 꼬옥 간직하고 설레며 기다리는 사랑에 빠진 신부지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하느님의 어리석음과 하느님의 약함에 매료되어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기름을 저마다 준비해 등불을 켜들고 신랑을 마중하는 우리에게 이 기다림은 설레고 행복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어리석음을 따르기에 진정 슬기롭고, 하느님의 약함을 받아안기에 세상 무엇보다 강한 사랑을 소유합니다.

복음은 닫힌 문 밖의 실랑이로 끝을 맺지만 우리는 문 안쪽에서 벌어지는 혼인 잔치에 관심이 있지요. 마침내 주님과 함께 들어선 혼인 잔치상에서 나의 사랑의 등불은 밝게 빛날 것입니다. 그 빛이 그분과 나의 얼굴을 더욱 아름답고 찬연히 비추며 우리의 사랑은 영원히 타오를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이 사랑에 잠겨 행복한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