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8월 25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dariaofs 2020. 8. 25. 05:39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마태 23,23)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그들은 율법과 관습이 정하는 십일조 등의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 겉으로 전혀 하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이 오만으로 흘러넘쳐 함부로 동족을 심판하기 일쑤였지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마태 23,23)

예수님은 십일조 이상으로 지켜져야 하는 율법의 정신을 말씀하십니다. 정신과 실천은 신앙을 받치는 두 기둥과 같아서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요.

사실 인간 삶에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상대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주는 것도 사랑의 표현이고, 상대를 닮고 따르고 일치하려는 것도 사랑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지요.

십일조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의 일부를 떼어 감사의 마음으로 되돌려 드리는 제도입니다. 이는 사제나 레위인들처럼 하느님께 봉사하는 이들의 생활과 성전(교회)의 유지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되었지요. 십일조가 단순히 의무 때우기나 요식행위로 그치지 않으려면 십일조를 골라내어 바칠 때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진심 어린 감사와 사랑의 표현이어야 받으시는 그분께서도 흡족하시겠지요.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는 하느님의 속성입니다. 이 모든 덕행의 완전한 상태가 바로 하느님이시지요. 우리는 부족하나마 이 덕들을 얻고자 노력하면서 하느님을 닮아갑니다. 사랑하는 이와 같아지려는 노력이 곧 사랑의 표현이니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무엇을 드리는 행위 못지않게 그분을 닮아 일치하려는 지향도 경시해서는 안 되는 사랑이라고 강조하십니다.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마태 23,326)

예수님께서 보여지지 않는 사랑과 보이는 사랑이 하나이길 촉구하십니다. 품은 마음과 드러나는 실천이 유리되지 않기를 바라시는 겁니다. 하느님께도 이웃에게도 마찬가지지요. 사랑 없는 봉헌이나 희사는 오히려 상대에 대해 모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적이 퍼뜨리는 교설에 흔들리지 말라고 테살로니카 신자들을 격려합니다.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2테살 1,15)

사도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예수님을 전합니다. 예수님에게서 받은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은 없지요. 예수님께서 곧 복음이십니다. 그리고 그 복음 내용이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사도는 신앙의 길에서 형식이 지나치게 세분화되고 비대해져 이 본질이 가려질까 염려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생명과 숨, 건강과 에너지, 재능과 재물, 기도와 축복... 우리는 주님께 받은 것을 주님께 도로 바치고, 또 이웃과도 나누면서 살아갑니다. 크건 작건, 많건 적건 우리의 봉헌이 사랑에서 우러날 때, 진정 하느님의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의 표현인 것이지요 아울러 우리는 이 덕행들을 실천하면서 점점 더 주님을 닮아갑니다.

"행복하십니다, 사랑하는 분을 닮아가고 그분과 일치하려는 엄청난 사랑의 여정 안에 있는 여러분 모두!"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