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참 신앙인의 자세를 이야기하십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하지 마라."(마태 23,3)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종교 지도자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평가일 겁니다. 여타 학문의 전문가와는 달리 종교란 가르침과 행동이 둘이 아니라 하나여서 일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분야니까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11)
예수님께서 "보이기 위해" 행동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적나라하게 지적하십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데 하느님의 이름을 이용하기 때문이고, 우월감과 교만으로 으스대기를 일쑤이며, 하느님 백성 위에 군림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바는 딱 그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섬기는 사람"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28)고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밝히셨지요. 예수님은 가르침뿐만 아니라 실제로 섬기십니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과 차별성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말하는 바를 실천하는 행동은 백 마디, 천 마디 소리와 비교할 수 없는 진정성과 파장이 남습니다.
제1독서는 주님의 집이 주님의 영광으로 다시 가득 차는 희망적 장면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에제 43,4)
어제 이스라엘이 다시 부활하리라는 환시에 이어 오늘은 주님께서 다시 주인으로서 새 성전을 차지하시는 대목입니다. '유배살이가 이십오 년에 이르렀을 때, 예루살렘 도성이 무너진지 십사 년째 되는 해'(에제 40,1 참조)에 주님께서 보여 주신 희망의 장면이지요.
"이곳은 내 어좌의 자리,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 곳이다."(에제 43,7)
지금은 남의 나라 땅에서 서럽고 모진 유배살이를 하는 처지지만,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모아들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사시겠다고 하십니다. 유배살이가 세대를 넘어가는 때에 이만한 희망의 말씀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이스라엘의 하느님 백성이라는 고귀한 신분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선민사상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소명은 자기들이 받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널리 퍼뜨려 하느님 구원 계획에 협력하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계급의식과 우월주의, 분리주의로 더 견고히 고착된 것입니다. 설령 이스라엘이 유배에서 돌아온다 해도 이 구태를 벗지 못하면 그들은 주님의 현존을 제대로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이스라엘의 오만을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의 행태를 들어 언급하십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 허세에 의지해 산다는 것은 사실 내면에 주님을 모시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하느님께서 다시 머무르신다는 희망은 옛 영화와 신분질서로 회귀하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존감 있는 백성으로 마음껏 사랑하고 섬기라는 새 부르심이었지요. 조상들은 비록 놓쳤지만,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또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미입니다.
나의 이웃을 그가 사회에서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기꺼이 섬길 수 있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가족이나 친지, 지인 등 옆 사람을 높여 줄 수 있는 이는 사실 속이 꽉 찬 사람입니다. 그는 내면이 하느님 현존으로 가득 차서 낮추어도 비참하지 않고 섬겨도 비굴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말씀을 모시고 사는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성령께서 현존하시는 성령의 궁전이기도 하지요. 더 이상 우리는 윗자리를 탐하거나, 깜냥보다 낫게 보이기를 바라며 겉꾸미거나, 자기 영광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낮추고 섬겨도 여전히 존엄한 하느님의 자녀이고, 무시와 업신여김에도 구겨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제자니까요!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니 우리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영으로 가득 차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머무려느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천상 모후의 면류관을 받으신 여왕이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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