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8월 21일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dariaofs 2020. 8. 21. 06:04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이 되어 주십니다.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에제 37,2)

주님께서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보여 주신 뼈들은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뼈 안에 흐르며 양분을 나르던 윤기 가득한 생명의 힘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마른 뼈들이란 회복의 희망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흉물에 불과합니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에제 37,5)

실제로 예언자 앞에서 뼈들이 서로 이어 붙더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고 살갗이 덮였습니다. 또 그들 안에 숨이 들어가 제 발로 일어서서 살아 움직입니다. 아무도 상상조차 못 한 일이 마른 뼈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에제 37,14)

이 놀라운 광경은, 회복의 가망 없이 처절히 무너진 이스라엘이 다시 생명을 받아 되살아나리라는 당신 계획을 하느님께서 분명히 보여주신 것이지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에제 37,14)

마른 뼈들은 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대로 다시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언자가 주님께서 예언하라고 하신 것을 그대로 따르고는 그 실행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그야말로 생생한 증인입니다. 이처럼 말씀은 그 자체로 이루어지는 효력을 지니십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마른 뼈들이 다시 생명을 얻듯이, 이스라엘도 주님의 말씀대로 언젠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하느님 백성의 자리를 되찾을 것입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 문답이 펼쳐집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마태 22,36)

이 질문은 몰라서 하는 질문도 아니고, 더 깊은 가르침을 듣고 배우고 싶어서 하는 질문도 아닙니다. 그저 예수님을 시험해 올가미를 씌우려는 기득권자들의 음흉한 모략이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39)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셈을 모르지 않으시면서도 첫째 가는 계명을 물론 여쭙지도 않은 둘째 계명까지 친절히 일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이미 잘 알고 있던 정답을 콕 집어서 맞추신 것일까요? 오늘의 정황과 말씀에 머물러 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세하게 곁가지를 치다 못해 덩쿨로 무성히 얽혀 버린 율법 조항들 안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뿌리와 줄기를 짚어 주신 것입니다. 그건 그들이 잊어 버렸거나 간과했던 골수와 같은 본질인 것입니다.

정신은 희미해지고 형식이 방만해진 율법 조항들의 무게는 민중에게 과도하고 부담스런 짐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중요한 건 그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세부적 상황도 중요하고 구체성도 간과할 수 없지만, 이 모두는 중심이 되는 근본 원칙에 초점을 맞춘 다음의 문제지요. 그 근본 원칙이 바로 사랑입니다.

아무리 윤리적으로 모범이 되고 철저히 계명을 준수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지향이 사랑이 아니라 자기영광이나 완벽주의적 성향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결여된 율법주의적 삶은 수분과 양분과 골수가 다 빠져나간, 바싹 마른 뼈와 다를 바 없을 뿐더러, 거기에는 생명력도 온기도 없습니다. 그저 흉물일 따름이지요.

오늘 예수님께서 짚어 주신 두 계명,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답변은 그 자체로 이미 그들과 우리에게 내리신,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이 "사랑"으로 예수님은 바싹 말라버린 뼈들처럼 되어버린 바리사이들, 율법 학자들의 마음에 숨을 불어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회복의 희망 없이 나락에 떨어진 우리에게도 새 생명의 희망을 안겨 주시는 것이지요.

그들은 이 "사랑"이라는 참 명령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요. 오히려 온갖 형식의 잣대로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리고 말라버린 생명 잃은 뼈처럼 되었다면 주님께서 주시려는 생명의 숨을 힘껏 빨아들여야 살 수 있습니다. 재기할 가망 없이 실패했거나 더 떨어질 수 없이 곤두박질 친 밑바닥이라도 주님 말씀은 우리에게 힘줄을 잇고 살이 오르게 해 주시는 생명의 힘이니까요.

모든 걸 다 잃었어도 사랑하고 있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세상 눈에는 실패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느님과는 견고한 사랑으로, 세상 영혼들과는 애정어린 기도로 단단히 엮여 있으니, 오히려 더 생생히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어지럽고 혼란하고 실망스러운 세상의 소음 속에서 주님의 말씀으로 다시 생기를 찾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윤기 잃은 영혼 안에 사랑의 진액이 되어 흐르길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이라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면 주님은 우리에게서부터 다시 새 창조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