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의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예언자로 여긴다고 하는데, 그럼 당신과 함께 지내는 제자들은 어떻게 여기는지 제자들이 숙고할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큰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의 행복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지 깨닫게 되지요.
사람은 육적 존재인 동시에 영적인 존재입니다. 감각과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있기도 하고, 어떤 경로인지 인과 관계는 모호하나 영으로 깨닫게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영의 사정은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야 주어지는 것으로 우리 욕심만 가지고 이룰 수 있는 무엇이 아닙니다.
오늘 베드로가 행복한 이유는 그가 자기 생각이나 견해로, 즉 살과 피로 주님의 신원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일으켜 주시는 영감과 사랑으로 답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알려 주시는 바에 순종하여 그 자신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된 덕분이지요.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로마 11,33)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이야기합니다. 그분의 생각과 마음은 늘 우리를 앞서 가시면서 모든 것을 통찰하고 이끄시니 그 섭리에 영과 육을 내어 맡기고 주시는 대로 받으면 됩니다. 우리 쪽에서 감히 그 지식과 지혜를 탐할 수는 없고, 제 것을 섞거나 마치 제 것인 양 표절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대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선포한 베드로를 "반석"이라 칭하시며,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주십니다. 반석과 열쇠의 의미는 오늘 제1독서에서 잘 드러납니다.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나는 그를 말뚝처럼 단단한 곳에 박으리니, 그는 자기 집안에 영광의 왕좌가 되리라."(이사 22,22-23)
사실 신탁은 대개 예언자나 임금에게 내리는데, 이 대목은 시종장 세브나를 대신해 앞으로 궁궐을 관리하게 될 엘야킴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주시겠다는 "열쇠"는 다윗의 집안(왕실)을 관리하는 직책을, 그가 굳건히 딛게 될 "말뚝처럼 단단한 곳"은 "반석"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베드로에게 주어진 열쇠와 반석의 의미는 엘야킴의 그것을 초월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서 받은 "열쇠"로 다윗 집안의 울타리를 넘어 온 세상에 세워질 주님의 교회를 관리하게 될 것이니까요 또 결국 엘야킴의 집안도 패망하여 "단단한 곳"에서 떨어져 나갈 터이지만(이사 22,41 참조) 주님께서 기초로 놓아 주신 반석은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높이 계셔 낮은 이를 굽어보시고,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알아보시나이다."(화답송)·
주님은 다 아십니다. 그분와 지혜와 지식은 완전하고 한계가 없으니까요. 우리의 얕은 꾀나 속셈, 야망과 탐욕도 한눈에 살펴 아십니다. 아시면서도 그저 쯧쯧... 안타까워 하시면서 모르는 체 참아주고 계시는 것뿐이지요. 우리 한계도 아시고 가능성도 아시니 유예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우리의 무지와 연약함, 어리석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당신께서 채워주시면 되니까요. 그러니 주님께서 주시는 대로 머무르고 새기고 나누면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깨달음과 앎에 자기 영광을 섞으면 오염되어 버리니 조심해야 하지요.
우리의 행복은 여기에 있습니다. '앎'도 '소유'도 '관계'도 '소명'도 주님께서 주시는 만큼 감사히 받아 기쁘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우리의 행복은 살과 피의 차원을 넘어 사랑이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에게 보내시는 주님의 이 격려에 힘 입어 오늘도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는 우리는 그것으로, 그만큼 행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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