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를 "봄"의 신비로 초대합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 1,48)
예수님께서 필립보의 말을 듣고 당신을 만나러 온 나타나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러" 오기 전에 이미 그를 "보신" 것입니다.
보는 것은 시각을 통해 감지하는 행위지요. 그저 스치듯 힐끗 보고 이내 잊어버려 의미로 연결되지 못하는 "봄"에서부터, 봄이 앎으로, 사랑으로 이어져 서로에게 영향이 되는 "봄"까지 매우 다양한 층위가 존재합니다. 짧은 순간이었겠지만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나타나엘을 바라보신 예수님의 "봄"이 바로 후자의 "봄"이었지요. 그가 오기도 전에 예수님은 이미 그를 "알고" 계셨습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49)
"와서 보시오."라는 필립보의 초대에 예수님을 보러 온 나타나엘이 이미 자신을 봐서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두 존재 사이의 봄이 신비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그분이 나를 보고 아시고, 내가 그런 분을 보고 깨달아 나도 모르게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네가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0)
"봄"이, 본 주체와 대상, 서로에게 의미가 된 이는 시각적 "봄"을 뛰어 넘어 보게 됩니다. 그것이 곧 관상입니다. 관상의 "봄" 안에는 앎과 사랑이 구분 없이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깊어갈수록 기도 안에서 "봄"과 앎과 사랑의 구분이 사라지지요.
앞으로 보게 될 일은, 스승께서 보여 주실 표징과 자신들이 수행하게 될 주님의 일, 그리고 스승의 수난과 죽음, 종래에는 부활과 승천의 영광까지, 여태 보고 안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난 신비일 것입니다.
나타나엘의 고백은 비록 말 마디가 전하는 바는 손색이 없으나, 그 말 마디를 채우는 그의 깨달음은 아직 설익은 단계입니다. "더 큰 일"을 보고 알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고백한 말의 내용이 스스로의 내면에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봄"은 하느님 나라에서 그분을 마주뵈옵는 지복직관의 행복에 다다르기 전까지 끝없이 완성되어 가는 여정 중에 있습니다.
제1독서는 한층 더 나아간 "봄"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묵시 21,9)
천사가 묵시록 저자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갑니다. 거기에서 묵시록 저자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묵시 21,10)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거하시던 도성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자랑이었지만 유다의 멸망과 함께 이민족들에게 유린당해 폐허가 되었지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는 잊혀진 도성 예루살렘을 다시 정결하고 거룩한 신부로 단장시켜 당신 앞에 세우십니다.
묵시록 저자는 아름다운 신부에게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하나씩 적힌 열두 성문과, 열두 사도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는 성벽의 열두 초석을 봅니다. 예루살렘은 구약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의 뿌리가 되는 열두 지파와,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주춧돌인 열두 사도의 이름 모두를 품에 아우른 진정한 그리스도의 신부임이 드러납니다.
주님의 신부인 도성에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그분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자체로 도성은 이미 순결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찬란합니다. 그 도성을 바라보는 묵시록 저자와 함께, 이를 바라보도록 초대받은 우리 역시 차츰 그 도성과 하나가 되어 갑니다. 우리는 어린양의 신부를 "봄"으로써 감동하고 뜨거워져 닮아가고 같아집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봅니다. 보면서 알고 사랑하고 영향을 받지요. 관상기도는 그래서 우리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 모상을 끊임없이 캐내고 발굴하는 과정입니다. "봄"이 "일치"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을 지내며, 사도들이 그러했고 성인들이 그러했듯이, 우리가 보고 알고 사랑하고 분께 더욱 깊이 머물러 그분을 닮아가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봄"의 기도로 초대받은 벗님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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