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8월 18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dariaofs 2020. 8. 18. 06:17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부자에 대한 주님의 입장이 드러납니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마태 19,23)

부유한 젊은이가 슬퍼하며 떠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누군가에게는 많은 재물을, 누군가에게는 지혜를, 누군가에게는 건강을 주신 건데, 왜 유독 부자만 구원이 어려운 걸까요?

여기서 주의할 점은 예수님께서 "불가능하다"고 하시지 않고 "어려울 것"이라고 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이 현세를 살아내는 것이 어렵다면, 부자는 내세에서 구원받기가 좀 더 어려운가 봅니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하다고 하시지는 않으셨지요.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재화와 권력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부자는 유산으로든 능력으로든 천운으로든 하느님에게서 더 많은 물질을 부여받아 관리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부자는 자신에게 부당하게 쏠린 재물을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과 나눔으로써 재산을 허락하신 하느님의 뜻에 부응하게 됩니다. 그 재물이 애초에 그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가난한 이들은 부자들에게 성가시고 불편하며 무시해도 좋을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자들의 구원을 위해 곁에 두신 선물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부자들이 구원에 가까워질 뿐만 아니라 세상도 더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1독서는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티로의 임금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대목입니다.

"너는 그 큰 지혜로 장사를 하여 재산을 늘리고는 그 재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졌다."(에제 28,5)

티로는 지중해 지역에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 항구는 각 지역의 특산물이 무역을 통해 오가고 문화가 교류되는 곳이지요. 자연스레 상업과 거래가 활발해지고 부가 축적되며 여러 문화와 종교가 섞이게 됩니다. 그렇게 쌓인 지식은 또다른 부를 낳으며 도시를 확장시키고 화려하게 만들지요.

"네 지혜로 이룬 아름다운 것들을 치고, 너의 영화를 더럽히며, 너를 구덩이로 내던지리라."(에제 28,6)

자신이 쌓은 업적과 치적, 재물과 명예를 오직 자신을 위해 소유한 이에게 내리시는 주님의 선고입니다. 지혜나 아름다운 보물들, 재물과 영화는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립 가치를 지니지요. 잘 쓸 때 좋은 것이 되고, 오용할 때 나쁜 것이 됩니다. 티로는 하느님 덕에 부유해지고 화려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제 힘인 양 우쭐대며, 자기 영광과 쾌락과 만족을 위해 사용했으니 하느님 보시기에 부적격 판정이 내려진 것이지요. 그분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화답송)시는 분이니까요.

그러니 부자로 세상 것을 실컷 누리고 살면서 내세의 영원한 생명과 행복까지 바란다면, 어려움을 각오해야 합니다. 있어도 교만해지지 않기는 어려우니까요. 있으면서 이기적이 되지 않기도 쉽지 않습니다. 있는 것을 사심없이 나누는 것도 만만히 볼 일이 아닙니다. 있는 이가 없는 이를 겉으로든 속으로든 모욕하거나 조롱하지 않으려면 보통 이상의 인격도 갖추어야 하지요.

있으면서 있는 것 티 내지 않고 뻐기지 않기란 또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람 욕심은 한이 없어서 있어도 만족을 모르니 감사 대신 불평만 늘고, 주위에 경계와 의심을 거두지 못하니 마음은 또 얼마나 불편합니까?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니 오만함을 달고 살 테고, 인간에게 닥치기 마련인 불행이나 고통 앞에서 하느님을 꾸짖으며 항변하겠지요. 하느님을 주님으로 섬기지 않고 자기 재산이나 불려주는 집사처럼 여겨왔으니 실제로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 19,26)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하느님께는 가능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하느님께는 오매불망 사랑하는 자녀들이기 때문이지요.

"...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 19,29)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부자들에게 힌트를 주십니다. 부자여도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버리는 것, 주는 것, 나누는 것이라고요. 버리고 주고 나눈 만큼 백 배의 상급과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니, 버릴 것, 줄 것, 나눌 것이 많은 부자들에게는 어쩌면 희소식이 될 법도 합니다. 단, 영원한 생명을 바란다면 말이지요.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태 19,30)

하늘 나라는 세속 삶에서 매긴 순서와는 사뭇 다를 것 같습니다. 많은 경우, 소유로 매겨진 순서, 권력으로 매겨진 순서, 배움으로 매겨진 순서, 신분으로 매겨진 순서가 하늘 나라의 새 질서 안에 다르게 재편될 것입니다. 여기서 첫째라고 거기서도 첫째가 되라는 법이 없고, 여기서 꼴찌라고 거기서도 꼴찌로 살라는 법도 없을 겁니다. 어쩌면 지상에서 소유한 만큼이 반영되기보다 나눈 만큼이 반영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벗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 들어선 이상 구원은 우리 모두의 지향점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과 누리는 영원한 행복을 거부할 이유도 마다할 이유도 없지요. 현세에서도 행복하고 내세에서도 행복한 삶의 해답은 오늘 말씀 안에 들어 있습니다. 물적 재산이건 영적 재산이건 자신의 부유함을 내놓고 나눈 만큼 우리는 하느님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며 이 어려운 레이스에 도전하신 여러분 모두를 격려하고 응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