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이스라엘에서 시작되어 온 민족에게까지 확장된 하느님 구원 계획의 지평이 펼쳐집니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이사 56,7)
제1독서에서 예언자는 당신 기도의 집으로 몰려들 대상을 "모든 민족"으로 바라보십니다. 처음 선택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이는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한 시작으로, 종래에는 모든 역사와 지역을 아우르는 온 인류가 그 대상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이사 56,6)
처음에는 하느님을 몰랐지만 섭리와 은총에 의해 하느님을 알게 된 이들도 당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듯,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따름으로써 주님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하느님 계획을 이야기합니다.
"내 살붙이들을 시기하게 만들어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구원할 수 있을까 해서"(로마 11,14)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자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유다인들은 바오로의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이방인 선교에 헌신적으로 투신하면서도 믿음을 거부한 동족에 대한 안타까움을 늘 안고 있었지요.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로마 11,29)
하지만 사도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한번 시작된 구원의 여정, 한번 주어진 은사, 한번 부여된 소명을 하느님께서는 절대 거두시는 법이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장은 그들이 유다교의 고유성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폐쇄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주님께서 당신 계획을 완성하실 것이니까요.
복음은 우리가 자주 만나는 '어떤 가나안 부인의 믿음' 이야기입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마태 15,24)
마귀 들린 딸의 치유를 간청하는 이방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던지신 첫번째 도전입니다. 선조 시대에 하느님께서 누구보다 먼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음을 일깨우시는 듯하지요. 사람을 가리지 않으시고 두루 품으시는 예수님의 성정으로 보아 거절 의사라기보다 '시작은 그랬다'는 일침으로 들립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6)
예수님께서 이방 여인에게 던지신 두번째 도전입니다. 이 여인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이스라엘이 하느님 백성으로서 믿음을 다지느라 거쳐왔던 모진 평지풍파와 환난고통, 우여곡절을 한순간에 압축해서 직면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인텐시브 코스, 집중 과정이라고 할까요...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이스라엘 혈통이 아닌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이방 여인의 답이 참으로 겸손하면서도 담대합니다. 유명한 예언자로 불리는 한 유다인 남성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매달릴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아픈 딸에 대한 모성 때문이겠지만, 그녀의 지혜와 포부는 무거운 가정사 안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미 구원이 "부스러기"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꿰뚫고 있습니다. 그 부스러기를 얻어낼 수 있다면 강아지인들 어떻고 종인들 어떻겠습니까! 강아지에게도 종에게도 믿음이 있다면, 무한한 주인의 자비가 미치지 않는 대상이 없을 테니까요.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15,28)
예수님께서 기쁨에 차 탄복하십니다. 첫 계약 당사자들의 불순종과 이방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크게 대조를 이루는지 예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큰 그림이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흡족히 관상하시는 듯합니다. 이스라엘이 의식의 빗장을 꼭꼭 걸어놓은 사이, 구원을 향한 믿음은 이미 혈통적 계보의 담장을 뛰어넘었습니다. 어느 한 민족의 소유물이 될 수 없는 '구원'은 한 곳에 고여 있지 않고 주님의 말씀과 사랑에 실려 온 세상의 대기 안에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멋 옛날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하신 구원의 청사진이 차곡차곡 완성을 향해가는 중입니다.
예전에, 카나의 혼인잔치를 표현한 어떤 그림에서 식탁 주변 예수님 아래에 그려진 강아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림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야 발견할 수 있는 디테일이었지요. 화가는 천상 혼인잔치를 묘사하면서, 비이스라엘 혈통의 이민족 신분인 우리 모두를 강아지로 그 자리에 새겨 넣은 것 같았습니다. 완성의 때에 천상 혼인잔치에 함께할 수 있다면 종인들 어떠하고 강아지인들 어떠하겠습니까!
이방 여인의 믿음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줍니다. 신분이나 위치, 소유 등의 외적 조건이 아니라, 믿음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우리를 구원에로 이끈다는 확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처한 무겁고 힘겨운 내외적 조건을 뛰어넘어 주님께 겸손하고 담대히 믿음을 고백하고 자비를 간청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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