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dariaofs 2020. 8. 13. 06:02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용서의 이유와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용서할 수 있는 최대치의 횟수를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완전한 숫자 7이 두 번 반복되었으니, 말하자면 계속, 쭉, 끝까지, 영원히 용서하라는 뜻이지요.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마태 18,33)

예수님께서 '어마어마한 빚을 탕감받은 종이 훨씬 적은 빚을 진 제 동료를 감옥에 보냈다가 혼쭐이 난' 비유를 들려주시며 용서의 이유를 밝히십니다. 부족한 죄인인 우리는 늘 아버지의 용서를 받으며 살고 있으니 우리도 용서를 하라는 뜻입니다.

용서는 용서받은 이의 의무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용서받는 것은 상대에게 영적 빚을 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용서를 할지 말지 결정할 때 구속력이 되는 것은 외부적인 것보다 마음에 쌓인 바로 그 빚의 무게가 될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용서"(마태 18,35)

용서의 방법입니다. 용서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용서는 겉으로, 번지르르한 말로 때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마음과 영혼, 전 존재가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살다보면 힘 들여 용서한 일이 자꾸 기억과 감정에 소환되어 마음을 어지럽힐 때가 종종 있지요. 아직 그 일을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해서 그럴 것 같습니다. 상처는 아물었어도 흉터가 남듯이 고통도 남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혹 용서가 단 한번으로 되지 않으면 떠오를 때마다 주님께 의탁하며 마음으로 되풀이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으로부터 용서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치유의 주도권은 주님께 넘어갑니다.

제1독서에서는 유다 왕국의 몰락과 유배,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을 위한 예표로 삼았다."(에제 12,6)

에제키엘 예언서를 읽다보면 그의 기이한 행동을 자주 만납니다. 대부분의 예언자들이 그렇듯, 예언자의 말과 삶과 행동이 백성에게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지요. 예언자들이 주님께서 일러 주시는 대로 한 행동들은 곧잘 백성의 조롱과 비웃음거리가 되지만, 결국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한 예표입니다. 내가 한 것과 똑같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에제 12,11)

예표는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가올 미래에 영향을 미칠 실마리도 됩니다. "예표"와 "하느님의 실행" 사이에 회개와 용서가 끼어든다면 하느님은 언제라도 당신 계획을 돌이키실 것이니까요.

사실 우리에게는 이미 완전한 예표가 주어졌습니다. 완전한 사랑의 예표, 완전한 희생의 예표, 완전한 용서의 예표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시지요.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내가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희도"라는 말씀 안에는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을 완전한 예표로 세우실 주님의 비장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예표가 되어야 합니다. 거짓과 탐욕과 위선의 예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예표 말입니다. 조금 손해를 보아도, 상처 받고 아파도, 심지어 바보 취급을 받아도 희생하고 용서하는 사랑의 예표가 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닮았구나!" 하며 기뻐하시겠지요.

사랑하는 벗님! 무르익어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란 부와 권력을 거머쥔 유력자가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님을 닮은 작고 겸손한 용서의 달인, 사랑꾼의 모습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참 어렵지만 의미 있는 이 좁은 길에 들어선 여러분을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나아가는 길 안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에게 격려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