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구원의 조건을 이야기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
이 말씀의 청중을 열두 제자로 한정하면 이는 성사를 통한 직무사제의 사죄권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좀 더 확대해서 보면, 보편사제직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 곧 우리 모두 또한 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음을 알 수 있지요.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마태 18,15)
관계 안에는 갈등 요소가 있게 마련입니다. 서로 생각하는 방향과 가치관, 지향과 욕망의 크기와 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제 생각과 방식이 타인에게 상처와 모욕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삼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게 해를 가한 상대에게 기회를 주라고 하십니다. 그의 반응에 따라 그를 형제로 얻기도 하고 잃을 수도 있지만, 그건 상대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건 일단 그에게 기회를 주는 그 자체입니다.
땅에서의 용서는 땅에서 끝나지 않고 하늘에서도 상대를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반면 땅에서의 배척은 결국 상대에게도 심판이 될 뿐만 아니라 그 매듭을 풀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도 굴레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사실 권한이라기보다 상대와 자기의 행복을 위한 의무에 가깝습니다.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주님을 모신 공동체의 조건은 외형적 건물이나 조직이기 이전에 '주님의 이름'이라는 구심점을 갖습니다. 아무리 어마어마한 성전이나 힘 있는 단체라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주님의 이름과 그분의 뜻으로 행해지지 않으면 헛껍데기에 불과하지요.
제1독서에서는 매우 공포스런 장면이 펼쳐집니다. 예루살렘이 받을 벌(에제 9,1-7)과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고통스럽고 처참한 파멸의 때(에제 10,18-22)가 연이어 편집되어 있지요.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놓아라."(에제 9,4)
이마에 표를 받을 이들은 말하자면 환난에서 살아남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도성 안, 자기들 거처에 살면서, 예루살렘의 죄악을 슬퍼하고 하느님께 탄원을 올리던 평범한 이들,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이들입니다.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에제 9,6)
주님의 말씀에 멈칫, 잠시 숨을 고릅니다. 주님께서 당신이 거하신다고 하는 당신의 성전을, 그 안의 유지들을 제일 먼저 내어 주십니다. 죄가 있어도 성전 안으로 달려들어가 제단의 뿔을 잡으면 목숨을 건질 것 같았던 옛 희망은 온데간데 없이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그곳이 어디이건 그 안에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데도 아닙니다. 빈 껍데기일 뿐이지요.
부지불식 중에 우리는 교회 안의 신분이나 직책, 세례 증명서와 헌금 액수가 구원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늘의 말씀은 새로운 조건을 던지십니다. 주님의 도성에서 살아남아 미래를 경작하게 될 남은 자들의 생명, 즉 구원은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 이들에게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용서는 구원을 준비할 축복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가 누구건, 주님께서는 세상과 교회를 염려하며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래서 주님께 매우 값지고 소중하지요. 이 기도 안에서 용서도 사랑도 흘러 나옵니다.
그러니 우리, 세상과 교회가 마치 내 것인듯 애타게 주님께 매달립시다. 아무리 악의 힘이 득세해도 세상과 교회에 대한 우리의 눈물과 한숨을 이겨내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죄와 약함으로 질척거리고 비틀대더라도 주님을 모시고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구원은 올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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