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를 작음의 신비로 초대합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 18,1)
이 질문은 당시 제자들의 관심사를 반영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초기의 산상수훈에서 하늘 나라가 누구의 것이며 누가 행복한 사람인지 힘 주어 말씀하셨지만, 이미 그들 마음 깊숙히 심겨진 욕망의 뿌리가 그 가르침을 휘감아 덮어버린 것 같습니다.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마태 18,3)
예수님께서 의외의 대답을 하십니다. 큰 사람으로 대접받으려는 욕망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는 제자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즉 길을 되돌려 인간됨의 진정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큰 사람이 되기는커녕 하늘 나라에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5)
예수님께서 그들의 질문에 명확히 답하십니다. 물론 그들이 예상하고 기대한 답은 아니었을 겁니다. 입만 열면 제 자랑에 골몰하는 세속 삶에서 겸손의 덕은 무시당하고 손해보기 일쑤니까요.
사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자기 비하에 빠져 허우적댈 뿐, 진정으로 겸손하기 어렵습니다. 겸손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건강한 자존감에서 나오니까요. 겸손을 선택할 줄 아는 이는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척"하는 겉꾸밈이나 위선, 허세를 부리지도 않지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 18,10)
그래서 상대의 깊이를 통찰하기 전에 자기에게 이익이 될지 말지를 스캔하듯 정보화하는 세상은 작은 이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미소하고 가난하고 미약하고 침묵하는 작은 이들은 쉽게 업신여김 당하고 무시와 조롱에 노출되지만 자기 방어조차 할 줄 모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보호를 세상 권력이 아니라 하늘의 천사들과 아버지께 의탁합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지 않도록 애쓰라고 당부하십니다. 쉽게 간과되고 소외되고 무관심으로 지나치기 쉬운 그들이 사실 하늘에서 더 기뻐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세상 실리와 권모술수에 밝은 귀로는 알아듣기 어려운 말씀이지요.
제1독서는 에제키엘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받는 장면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에제 2,8)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에제 2,8)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에제 3,1)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에제 3,3)
"내 말을 전하여라."(에제 3,4)
예언자는 이런 존재여야 합니다. 그는 주님께서 하라시는 대로 하고 이끄시는 대로 따릅니다. 그래야 예언자의 말과 행동이 하느님의 것임이 드러나지요.
복음 속 "작은 이"란 예언자처럼 모든 것을 주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따르는 존재일 것입니다. 그의 수동성은 무기력이나 회피가 아니라 의탁의 열매입니다. 그는 자의적 욕망보다 하느님의 뜻에 충실합니다. 자기 욕망과 하느님 뜻이 긴장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이미 하나로 합쳐졌기 때문입니다.
세상 눈으로는 순박하다 못해 바보 같고 함부로 농락해도 되는, 쉬운 사람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그의 도움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그를 무시하는 것은 하늘의 천사들이나 하느님 아버지께 맞서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의 어떤 보호 장구나 인맥을 갖추지 못한 그의 힘센 후견인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녀 클라라 축일에 작음 안에 감춰진 하느님의 힘을 볼 수 있기를 청합니다. 자신의 작고 어리석음을 슬퍼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웃의 작음을 업신여기지 않는 지혜를 청합니다. 작음은 우리를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게 만들어 주는 축복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 성녀 클라라,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0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0) | 2020.08.13 |
|---|---|
| 2020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0) | 2020.08.12 |
| 2020년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0) | 2020.08.10 |
| 2020년 8월 9일 연중 제19주일 (0) | 2020.08.09 |
| 2020년 8월 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0) | 2020.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