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8월 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dariaofs 2020. 8. 8. 05:44

오늘 미사의 말씀은 기다림의 조건을 이야기합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마태 17,17)

병에 걸린 아들의 치유를 청하러 예수님을 찾아온 한 아버지의 간청에 그분께서 한탄하십니다. 이미 그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희망을 걸었다가 잔뜩 실망하고 만 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은 물론 당신 주변에 모여든 군중에게서 믿음이 싹 트고 자라길 바라십니다. 번번이 안타까운 한탄으로 끝나버리기도 하지만 주님은 결코 우리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으시지요.

사실, 언제까지 참아 주어야 하느냐고 말씀은 하셔도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처럼 끝까지 우리를 참아 주시고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아버지를 믿고 또 우리를 믿으시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권고하시는 "믿음"의 모범이요 원형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바꾹 예언자가 하느님께 하소연합니다. 항변에 가까운 질문을 던지면서요.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바라보고만 계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이를 집어삼켜도 잠자코 계십니까?"(하바 1,13)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바빌론을 통해 유다의 불륜과 불충을 심판하고 벌하셨음을 모르지 않지만, 원수의 잔악하고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 이제는 주님께서 나서 주시길 청합니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하바 2,3)

이제 이슈는 바빌론이 아니라 믿음으로 넘어갑니다. 기다릴 수 있는 이는 믿는 이지요. 인간 편에서 볼 때 그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뿐, 시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느님께는 반드시 이루어질 섭리니까요.

믿지 못하는 인간의 조급함은 기다림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유한하고 평면적인 도식 안에 억지로 우겨넣기 때문입니다. 그 도식에 맞아야 안심하고, 그 도식을 넘어서면 불안해 하니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믿음은 자랄 터전을 잃고 맙니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하바 2,4)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부족하나마 하느님의 모상성을 최대한 발휘하며 살아가는 의인 역시 그 성실함을 닮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주심으로써, 의인은 그런 하느님을 변함없이 믿음으로써 각자의 성실함을 완성하지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의 힘을 말씀하십니다. 믿는 이에게 불가능이 없다는 말씀은 늘 자기 한계 언저리만 맴돌다 주저앉고 마는 제자들과 우리들을 내리치는 죽비 같은 깨우침입니다.

영성생활에서 기다림은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그저 어째도 상관 없는 수동적 시간 보내기가 아니지요. 그래서 기다림은 고요한 투쟁입니다. 언제일지 모르는 약속의 실현을 기다린다는 것은 무너지려는 내면을 반복적으로 붙잡아 일으키는 수고로운 결단의 연속과 같습니다. 시간이나 결과에 대한 인간적 셈법을 내려놓고,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며, 논리 밖의 것을 신뢰하면서 하느님의 질서 안으로 몸을 던지는 신비적 투신인 동시에 도약입니다.

"주님, 당신 이름을 아는 이들이 당신을 신뢰하나이다."(화답송)

앎은 사랑입니다. 주님 이름을 아는 이는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가리키지요. 그분을 알고 사랑하는 이는 믿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다가와도 성실하신 그분께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 안에서 믿음의 강자는 병든 아이의 아버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먼저 제자들을 믿었고, 그 믿음이 보상받지 못해도 지치지 않고 예수님께 달아들었지요. 그리고 그는 온전해진 아들을 돌려받음으로써 믿음을 보상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구마 치유 기적은 그 아버지의 믿음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를 믿어 주시는 주님을 오늘 우리가 믿어드립시다. 그분은 믿을 구석 별로 없는 우리에게서 믿음을 거두지 않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시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오늘 이 자리까지 오셔서 말씀을 통해 만나는 벗님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성 도미니코, 믿음이 부족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