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8월 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dariaofs 2020. 8. 6. 02:48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 앞의 두려움을 이야기합니다.

제1독서는 다니엘 예언자가 본 환시 대목입니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다니7,9)

"연로하신 분"은 성부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사람 손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희고 깨끗한 빛깔과 광채, 그리고 불이 하느님의 영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다가가자, 그분께 인도되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다니 7,13-14)

다니엘이 밤의 환시를 응시하는 가운데 성자 예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그분을 인도한 구름은 성령을 뜻합니다. 이어 천상에서 마치 대관식과 같은 장면이 펼쳐지지요. 삼위 하느님의 영광스런 현존 가운데 사람의 아들께서 온 세상 모든 민족과 나라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실 권한을 받으십니다.

복음은 주님의 영광스런 변모의 현장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마태 17,1)

예수님께서 세 제자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십니다. "따로"는 거룩함을 위해 떼어놓는 성별을 의미하고, "높은 산"은 하느님 현존 장소를 가리키지요. 왜 예수님은 이 중요한 순간에 셋만 선택하셨을까요? 혹 제자단 안에 차별이나 특혜가 있었던 걸까요?

실제로 제자단 안에서 누가 더 높으냐에 대한 긴장이 끊이지 않았고 그로 인한 다툼이나 논쟁도 벌어졌음을 우리는 복음사가의 솔직한 기록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과 산에 오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중요한 순간에 다른 제자들보다 더 자주 주님과 동행하였지요.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마태 17,6)

예수님께서 해처럼 빛나시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고, 구름이 둘러싸고,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세 제자는 혼비백산합니다. 구름은 성령을, 목소리는 하느님을 드러내니 과연 이 자리는 삼위 하느님께서 온정히 현존하시는 영광의 자리입니다. 분명 영광스런 자리임은 틀림이 없으나 그들은 이 거룩한 신비를 감당하기가 버겁지요. 아무리 제자단에서 뽑히었다 해도 일개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신성을 일상의 일인듯 감당하기란 불가능한 까닭입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7,7)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그분은 제자들의 두려움을 잘 아시지요. 아직 준비가 안 된 이들에게는 영광도 고통만큼이나 두려운 법입니다. 예수님 또한 모세, 엘리야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앞으로 당하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운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하셨을 것이기에 여러 감정의 결을 직접 건너 비장함에까지 이르셨을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마태 17,9)

예수님께서 아직 기쁨과 두려움이 채 가시지 않은 제자들에게 엄중히 명령하십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 되살아날 때까지"
오늘 이 거룩한 변모의 신비가 품은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영광은 고통을 지나 존재합니다. 인간사에서 대부분의 성취와 성공이 지난한 수고와 피땀의 산물임을 우리는 압니다. 오늘의 영광스런 현현 역시 예수님과 제자들이 생략 없이 건너야 할 운명의 강을 보여 줍니다. 관상은 이렇듯, 보이는 것 이면의 의미까지 비추어주지요.

오늘 거룩히 변모하시어 빛나는 광채로 다가오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십자가 위의 일그러지고 훼손된 고통의 주님을 관상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남은 걸 보면, 예수님께서 세 제자만 따로 데리고 가신 것이 특혜나 차별이라기보다 '부르심과 따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 신비의 환희와 빛과 영광은 물론 그 고통까지 포용할 소수의 숨은 이들을 예수님은 찾고 계실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남 보기에 그러듯한 직업과 재산, 외모와 명예, 지식과 인맥을 축복으로 여깁니다. 삶의 여정 속에 끼어든 고통까지 주님의 축복으로 여겨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사람은 안타깝지만 그리 많지 않겠지요. 그런데 오늘 주님의 모습에서 보았듯 고통과 영광은 한쌍입니다. 세트로 오는 축복이라고 할까요... 이 모두를 기꺼이 받아안고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우리 인생에 어느 모습으로 오셔도 외롭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벗님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지금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더 큰 축복과 영광의 통로라 여기며 힘내십시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