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dariaofs 2020. 8. 4. 02:54

 

오늘 미사의 말씀은 정화의 주체가 누구인지 묻습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깁니까?(마태 15,2)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손도 씻지 않은 채 음식을 드는 제자들을 보며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요즘처럼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해 서로의 건강을 염려해서 해 주는 말이면 오죽 좋겠습니까마는, 그렇게 보이지 않네요. 그들에게 중요한 건 조상들의 전통입니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 15,11)

예수님은 그들이 지닌 정결례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키십니다. 율법이 지켜져야 하는 건, 그것이 단지 조상 대대로 전해진 관습이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의 내용이 하느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움직이지요. 사랑은 고착되거나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식에 집착해 겉을 그럴싸하게 유지한다 해도 내용에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의 법이 아닙니다. 형식은 오히려 내면의 더러움을 간과하거나 눈감아 버리기 좋은 환경이 될 수도 있으니, 형식에 기대어 의무를 때우고 싶을 때는 내면을 더욱 엄중히 살펴야 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극과 극으로 상반되는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를 통해 내리십니다. 먼저 다시는 회복의 가망이 없는 듯 들리는 냉엄한 선고가 내려지고, 이어서는 놀랍게도 회복을 말씀하시지요.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예레 30,15)

이스라엘이 당한 상처와 부상, 종기, 버림받음은 우상을 사랑하고 섬긴 불륜의 대가입니다. 이스라엘의 신랑이신 하느님께는 더할 수 없이 불결하고 부정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들의 더러움은 영영 씻기기 어려울 것이고 용서란 기대할 수조차 없는 불가능처럼 느껴지지요.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리라."(예레 30,22)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하느님께서 생각을 돌이키시고 마음을 바꾸신 것입니다. 하느님께 얻어맞은 이스라엘이 유배와 억압으로 숨도 못 쉬며 감히 용서와 자비를 간청할 수도 없을 때,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정화하시고 당신 신부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정화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마태 15,13)

복음으로 돌아가 예수님 말씀에 머무릅니다. 농부이신 하느님(요한 15,1 참조)은 포도나무인 당신 백성을 심어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밭을 일구십니다. 밤낮없이 뙤약볕과 비바람을 아랑곳않고 극진히 돌보시며 보호해 주셨지요. 진정 아버지께서 심으신 초목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듣습니다. 완전히 다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그저 눈길과 손길을 통해 전해진 사랑을 오롯이 기억하는 정도겠지요. 이미 온 존재에 하느님 사랑의 내용이 속속들이 각인되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포도밭에서 그분이 심지 않으신 초목은 함께 어우러져 자라기 어려울 겁니다. 그 열매로 들포도와 참 포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버지에게서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이는 사랑을 나누고 싶어 몸살하며 움직일 겁니다. 사랑을 의무와 규율로 환원한 이들은 제도 안의 안전지대에서 어느 선까지는 자리를 보전하겠지만 결국 하느님 나라가 오면 뽑혀 밖으로 던져지고 말겠지요.

사랑하는 벗님! 오늘 우리를 깨끗이 하시고 거룩히 하시는 주님 손길에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립시다. 주님 덕분에 외부에서 우리에게 들어오는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사랑으로 정화되어 세상에 되돌려지게 될 것입니다. 미움과 무시, 분열과 조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하느님 사랑을 아는 우리가 정수기처럼, 공기청정기처럼 세상을 정화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그리하여 우리 입에서
"감사의 노래와 흥겨운 소리가 터져 나오리라."(예레 30,19)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