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를 성대히 기념하는 오늘, 미사의 말씀은 나눔과 일치를 이야기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라우렌시오 성인은 가난한 이들을 교회의 보물이라 불렀습니다. 성인은 사회와 교회의 도움을 받는 가난한 이들이, 단지 혜택을 받는 수혜자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사회와 교회를 성화하는 존재임을 알고 있었지요. 가난한 이에게 기꺼이, 기쁘게 미소와 마음과 손을 여는 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가난한 이들 안에 거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2코린 9,8)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베풀어 주시는 모든 것은 결국 선행을 위한 것이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자신과 가족만 잘 살고 누리며 끝내는 허무한 소비재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통해 하느님께 다시 되돌아갈, 길이 남을 열매가 되는 것이지요. 이 지혜를 일찌기 깨달은 이는 복됩니다. 그런데 이 귀한 깨달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요한 12,24)
밀알이 땅속에 묻혀 잘 썩으면 자기 자신의 형체는 사라지지만 다른 생명 여럿으로 변모됩니다. 하나의 생명이 여럿이 되는 셈이지요. 이 놀랍고 유쾌한 증식의 원리는, 그러나 한 생명의 죽음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고는 어렵습니다. 한 죽음이 여러 생명의 발화점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여기서 말하는 목숨은 본능적인 자기애와 이기심입니다. 나만, 내 가족만, 우리 편만 향하는 폐쇄적이고 편협한 차별적 욕망이지요. 이를 거스르는 것은 사실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니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아는 지성과, 그분을 믿는 신앙과,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은 사랑을 간직한 사람에게 가능한 축복이지요.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요한 12,26)
자기애와 이기심에서 죽을 수 있는 이에게는 엄청난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계시는 곳에 그분과 함께할 특권이지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주님과 함께 머무르길 바라니까요.
"내가 있는 곳"
그런데 주님께서 계시는 곳은 가난한 이들 한가운데, 가난한 이들 안, 가난한 이들 곁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동시에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또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이는 바로 주님께 바치는 것이지요.
이 지혜를 깊이 깨달은 라우렌시오 성인은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죽음을 당하지만 썩은 밀알이 되어 "의로움의 열매"(2코린 9,10)를 길이 맺었습니다.
"잘 되어라, 후하게 꾸어 주는 이!"(화답송)
시편 저자는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꾸어주는 이를 의인이라 부릅니다. 주님께 인정받는 의로움은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어지지요. 이 세상에 가난하게 오셔서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는 나눔의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 나눔이 주님과의 영원한 일치로 가는 디딤돌이고 징검다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천재지변과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온 세상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질병과 실직, 사랑하는 이와 삶의 터전을 잃고 아파하는 이웃이 망연히 하늘만 바라보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이웃의 고통 앞에서 내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기엔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이 지경까지 만든 공범이기 때문입니다.
너나할 것 없이 어려운 시대에 넉넉치 않을 줄 압니다만, 그저 주변을 한 번 둘러봐 주시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활짝 편 손을,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는 따스한 공감과 격려를, 영적 지지가 필요한 이에게는 아낌없이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연대하고 나누는 가운데 우리는 이미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나눔으로 주님과 일치를 이룬 여러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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