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8월 9일 연중 제19주일

dariaofs 2020. 8. 9. 06:11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시는지 알려 줍니다.

제1독서는 엘리야 예언자와 바알 예언자들의 대결 뒷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1열왕 19,11)

엘리야는 하느님 편에 서서 바알 숭배에 대항해 큰 승리를 거두지만 그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워집니다. 두려움에 하느님의 산 호렙까지 도망가 밤을 지낸 엘리야를 하느님께서 부르십니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1열왕 19,12)

그런데 하느님은 "크고 강한 바람"이나 산을 뒤흔드는 "지진", 삼킬 듯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계시지 않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다가오십니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동굴 어귀로 나와 서지요.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마태 14,24)

예수님께서 오천 명의 군중을 먹이신 뒤의 일입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남아 홀로 기도하고 계시고, 제자들이 호수를 건너다가 맞바람과 파도를 만나 밤새 오도가도 못하고 시달립니다.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마태 14,24)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닥치는 맞바람과 파도는 외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고 내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 마음이 격렬히 요동치는 건 탐욕과 이기주의가 마치 정의이고 선인 듯 자신을 휘몰아치기 때문입니다. 물신주의 세상에서는 이미 재물이 하느님 자리를 차지한 탓에 더 가지려는 욕망과 집단 이기주의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창조주가 존재하심을 모르지 않으나, 제 것이라 여기는 것에 털끝이라도 손해가 된다면 가난한 이들과 공존할 마음도, 피조물을 보호할 마음도 없습니다. 탐욕을 모든 것의 원리로 섬기기 시작한 이래 그 마음에 더 이상 평화는 없습니다. 진정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떼어 놓는 두려운 파도는 탐욕이란 보편적 악에 잠식당한 내면에서 출렁이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제자들이 호수 위를 걷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해 더 큰 두려움에 휩싸이자 예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며 그들을 격려하십니다. 주님의 현존은 거센 바람이나 파도처럼 폭력적이고 격정적인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선 두려움으로 출렁이는 제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십니다.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마태 14,32)

우리 삶의 원리, 영혼의 원천, 존재의 근원 자리에 주님을 모실 때 바람은 멎고 파도도 잠잠해집니다. 재물이 상석을 차지하고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평화가 찾아오지요. 재물과 탐욕과 이기심은 하느님 모상인 우리 인간의 절대 가치가 될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아무것도 없이 살 수는 없으나, 재물은 그저 주님을 모신 우리의 배 바깥에서 찰랑이는 배경 요소 중 하나로 족하지요. 우리가 잘 운용하고 나누며, 잘 탈 수 있는 파도와 같습니다.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화답송)

주님은 세상이 열광할 만한 영웅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너무 선하고 미약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끝자리 가난뱅이의 모습을 택해 오셨지요. 그분은 착취와 차별을 양분 삼아 자라는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모두가 두루 함께 누리는 공동선과 평화를 주러 오셨습니다. 당신 자신이 곧 평화이시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일찌기 하느님께 선택된 유다 민족에 대해 동족으로서 안타까움과 염려를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로마 9,4)

이스라엘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느님의 선민으로서 그분의 지고한 사랑과 특권을 누립니다만, 마침내 때가 차서 육화하신 하느님의 아드님, 구원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고립된 섬으로 남기를 자처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오로에게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로마 9,2)이 되지요.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들은 가난하고 힘 없는 이웃과 그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평화는 그제서야 찾아옵니다. 받은 축복과 사랑이 원래 내 것인 양, 이웃을 경계하며 "자기들"만의 성을 쌓기 시작하면 바람과 파도와 불은 외부에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자신의 삶과 관계와 이기심을 들썩이는 원리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그 안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지요.

마음이 욕심과 두려움에 출렁이며 분노와 이기심으로 자신을 끌어갈 때는 잠시 멈추어 영혼의 배에 예수님을 모셔들이면 좋겠습니다. 사실 얼마를 잃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를 더 못 가지느냐의 문제로 이웃을 멸시하고 구별하며 그 귀한 평화를 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양선하고 미약하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예수님 마음에 고요히 자신을 비춰보면 좋겠지요.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을 자기 안에 모신 이는 잃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주님이 모든 것, 전부이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어쩌지도 못 하는, 주님께 한 줌도 못 되는 파도에 괜히 마음을 빼앗겨 출렁이지 말고 고요히 평화를 견지하며 세상이라는 호수를 건너갑시다. 주님께 닿을 즈음이면 흥분하고 분노했던 자취가 머쓱하고 부끄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그때는 깨달을 것이니까요.

"주님은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영성체송)

믿는 우리에게는, 이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