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성모님을 기립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마리아께서 천사의 방문을 받고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신 후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인사말입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의 감도를 받아 외친 이 말씀은 성모님은 물론 교회가 받은 커다란 선물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조건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재물에서, 어떤 이는 명예에서, 어떤 이는 쾌락에서, 어떤 이는 관계에서, 또 어떤 이는 지적 성취와 깨달음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모님께서 그러셨듯 믿음 때문에 행복한 존재일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은 인간 사고력의 한계 안에서는 믿을 수 없는 주님의 뜻을 믿음으로써 구원에 협력한 믿음의 여인이십니다. 그분의 생애는 믿음으로 견고하고 아름답게 짜여진 지성소의 휘장과 같을 겁니다. 그 휘장을 통해 성자께서 보호를 받으셨고, 그 휘장이 열림으로 구원자께서 세상에 드러나셨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마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모든 민족을 다스릴 분"(묵시 12,5)을 낳은 뒤 악을 상징하는 용에게 쫓깁니다.
이는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고 뱀에게 이르신 주님의 선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아이를 삼켜버리려는 악한 힘인 용과 여인의 대치가 숨막히도록 급박하게 펼쳐집니다.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묵시 12,6)
여인은 이집트의 추격을 피해 갈대바다를 건너 광야로 달아난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주님의 백성인 우리까지도 그녀 안에 있는 셈이지요.
말씀이신 주님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며 살아가려 애쓰는 우리를 악은 가만히 두지 않으려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방해하고 공격하는 세상의 온갖 악에서 우리를 피신시켜 활짝 열어젖힌 당신의 "처소"로 받아들이십니다. 그 처소는 우리에게 가장 안전하고 평화롭고 거룩한 주님의 '심장'이고 '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이들을 이야기합니다.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1코린 15,23)
사도는 모든 원수들이 그리스의 발 아래 굴복될 때, "그분께 속한 이들"이 주님과 함께 영광 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성모님은 그 모든 때를 초월하여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할 원수인 죽음의 부패를 겪지 않으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가장 철저히 속하셨던 마리아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신 것이지요.
주님께 속한 우리 역시 그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록 실패와 상실로 삶의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더라도 우리의 본래 자리,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두신 "처소"는 모든 원수를 이기신 주님의 '곁', 승천하신 성모님의 품이라는 희망입니다.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루카 1,52)
이토록 상상할 수 없이 놀라운 하느님의 자비를 오늘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분은 들어 올리시는 분, 들어 높이시는 분입니다. 인간 실존과 죄악과 나약함으로 끝간 데 모르고 추락하는 우리를 친히 당신 곁으로 들어 올려 제 자리를 찾아주시는 분이시지요.
사랑하는 벗님! 오늘 우리의 어머니신 마리아와 함께 이 희망을 노래합시다. 코로나19와 수해, 혐오와 분열, 가난과 소외 와중에도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 곁에 마련된 우리 자리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천상으로 성모님을 모셔들이는 천사들과 성인들의 기쁨을 관상합시다. 마리아를 맞이하시는 성삼위 하느님의 사랑에 머무릅시다. 우리의 심장에서 희망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멈추지 말고 기도합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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