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dariaofs 2020. 9. 12. 05:37

오늘 미사의 말씀은 이미 좋은 나무이면서, 마음에 선한 곳간을 지닌 우리가 어떻게 자신과 이웃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지 알려 주십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루카 6,43)

우리는 나무를 보면서 열매를 떠올리고, 또 열매를 보면서 나무를 기억합니다. 나무와 열매의 인과 관계는 명확하지요. 좋은 열매를 맺었다면 나쁜 나무일 수 없고, 나쁜 열매를 맺었다면 좋은 나무일 수 없습니다.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루카 6,47)

좋은 나무로서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먼저 주님을 향해 다가오지요. 마음에 가득 찬 선한 내용들이 선하신 주님을 향해 본능적으로 끌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듣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과 마음에 귀기울여 경청합니다. 그의 존재를 타고 들어오는 주님의 모든 것이 곧 들을거리입니다.


이어서 그는 들은 것을 실행합니다. 주님에게서 전해진 모든 것은 지식으로 축적되거나 스스로 향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내 존재를 통해 외부로 표현됩니다. 우리는 이를 열매라고 하지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루카 6,48)

"땅을 깊이 파기"
세상 중심에 계시고 또 내 존재의 가장 심부에 계신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힘이 들고 고통도 따르는 지난한 여정입니다. 세상과 이웃의 이해도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반석 위에 기초 놓기"
바위이신 주님께 내 존재를 뿌리 내리는 것입니다. 바위이신 그분에게서 흘러 나오는 생수를 마시고 석청으로 배불리며 온전히 그분께 밀착하는 과정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바위를 뜷는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제공하는 온갖 소음들 속에서 그분 목소를 감지하고 알아듣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될 때까지, 무수히 반복하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기적과 같을 겁니다.



"집을 짓기"
이제 비로소 집을 짓습니다. 결과가 겉으로 보여지는 과정입니다. 땅을 깊이 파고 바위 위에 기초를 놓는 노력이 가시적 열매로 드러나는 겁니다. 모든 수고를 다 해놓고도 정작 집을 짓지 않으면, 주님에게서 받은 온갖 선하고 좋은 선물은 고작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그치게 됩니다. 인간적인 재능 정도로 제 안에서 고여 있다가 스러지는, 아직 열매도 은총도 되지 못하고 쭉정이 씨앗으로 사라질 뿐이지요.

 

"홍수가 나서 강물이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루카 6,48)

주님께 다가가 말씀을 듣고 실행에까지 이른 사람은 모진 세파와 혼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단단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큰 물도 사랑을 끌 수 없고 강물도 휩쓸어가지 못한답니다."(아가 8,7) 하는 아가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아가 저자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의 절정을 이렇게 표현했지요.



주님께 다가가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과정을 편의상 따로 떼어서 설명했지만, 실상은 사랑의 행위 안에 녹아들어 막힘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행위입니다. 그분께 이끌리는 갈망이 부단한 노력을 거쳐 실행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사랑이 완성되지요. 마음에 넘치는 것이 사랑으로 육화되어 세상에 주님 현존이 되고 사랑이 되는 신비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상숭배에 대해 경고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이 식탁에도 참여하고 마귀들의 식탁에도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1코린 10,21)

영혼에 선한 곳간을 지닌 이가 일부러 악의 곳간을 헤매고 다니지 않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우리는 축복의 잔을 마시면서 이미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고, 빵을 떼어 나누면서 이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좋은 나무들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복음 환호송)

주님께 다가가 그분을 듣고 들은 바를 실천하는 우리 안에는 이미 성삼위 하느님께서 들어와 살고 계십니다. 이 사랑의 일치 안에서 우리는 어쭙잖은 금액으로는 환산 불가능한, 선하고 좋은 열매를 세상에 낼 수 있지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 안에는 어떤 강물도 휩쓸어 갈 수 없는 열렬하고 굳건한 사랑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사랑 안에서, 주님께 다가가 듣고 실행하는데 지치지 않는 우리 모두는 복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맺는 이 맛깔스런 열매를 맛보시려 자기 정원에 찾아오십니다.(아가 4,16 참조), 우리는 주님과 함께 목마르고 허기진 세상을 향해, "먹어라, 벗들아. 사랑에 취하여라."(아가 5,1) 하고 초대할 것입니다. 이 사랑의 열매는 길이 남을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