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부터 며칠간 우리는 말씀 안에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매서운 질책을 듣게 됩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루카 11,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식사 전에 손 씻는 예식을 건너뛰신 그분을 보고 놀라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초대한 이의 체면을 봐서 에둘러 표현하지 않으시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데 철저했던 바리사이들에게 삶은 지켜야 할 구체적 규정들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늘 기억하고 챙기며 어느 하나라도 어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행여 어겼을 경우에는 율법이 정한 예물을 바쳐 부정함을 씻어냈지요. 율법을 준수하는 바리사이들의 겉모습은 누가 봐도 충실하고 올바른 의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속까지 보는 분이시지요. 바리사이들의 문제는 자신을 단속하는 시선을 타인에게까지 투사하여 율법의 척도로 심판하고 단죄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 눈에 사람은 의인과 죄인, 즉 정결한 이와 부정한 이로 나뉠 뿐, 개개인이 처한 다양한 현실과, 어떠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가 하느님 모상이라는 존엄성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탐욕과 사악"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올가미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남의 몫까지 움켜쥐려는 탐욕과,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악의 유혹이 많은 이들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을 정도지요.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1)ㅣ
바리사이들의 탐욕은 물질적 부의 축적뿐만 아니라, 그들이 독점하다시피 점유한 종교 권력에까지 미칩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이 위선을 벗고 진정 깨끗해지기 위한 해법으로 '자선'을 제시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내면에서 자비심이 발동해서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자선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죄인이라 치부한 이들에 대해 자비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자선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자선은 그들이 지닌 과한 재물과 완고한 율법주의를 덜어내고 해체하여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또 자선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정신을 회복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유다교 전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게 민감한 주제인 할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갈라 5,5-6)
할례라는 옛 계약의 표지는 성자의 희생 제사로 맺은 새로운 계약 안에 녹아 있습니다. 몸에 내는 할례의 표시로 하느님 백성을 가늠하던 옛 관습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영혼에 새겨진 사랑의 상처로 대체되었지요. 이제 율법의 규정들은 성령의 불로 녹아내려 사랑이라는 결정체로 응축되었습니다. 이렇게 율법은 사라진 게 아니라 완성된 것입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
사도의 이 대담한 단언은 오늘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제시하신 '자선'과 맥락을 같이하는 듯합니다. 율법 규정과 문자에 매여 노심초사, 주춤주춤,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한 발짝씩 떼는 이는 제 안위 챙기기도 급급할 터이니, 곁에서 굶고 울고 쓰러져가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어렵겠지요.
반면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건 이는 율법의 모든 내용이 사랑 안에 들어 있음을 알기에 문자에 매이지 않고 두려움 없이 성큼성큼 나아갑니다. 그에게 자선이란 그가 가진 물질뿐만 아니라 내면에 가득 흐르는 기도와 연민과 눈물을 나누는 연대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얼마간 의인이고 얼마간 죄인입니다. 얼마간 순수하고 얼마간 위선자기도 하지요. 그런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닮아 "모든 것이 깨끗해"지는 길이 오늘의 말씀 안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나누고 내어 주고 비우고 베풉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덜 비난하고 덜 불평하고 덜 단죄하게 될 것입니다. 더 믿고 더 사랑하고 더 기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벗님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0년 10월 15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0) | 2020.10.15 |
|---|---|
| 2020년 10월 14일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0) | 2020.10.14 |
| 2020년 10월 12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0) | 2020.10.12 |
| 2020년 10월 11일 연중 제28주일 (0) | 2020.10.11 |
| 2020년 10월 10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0) | 2020.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