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0월 14일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dariaofs 2020. 10. 14. 05:56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에서 매우 중요하면서도 놓치기 쉬운 의무를 알려 주십니다.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루카 11,42)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이 율법에 준하여 기꺼이 지키는 십일조 의무와 대비해 이를 제시하십니다. "의로움"은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지만, 무엇보다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또 이웃 간에 분배 정의를 실천함으로써 구현되는 덕목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은 긴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본질이지요. 사실 우리의 원천이고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하는 편이 맞을 듯합니다.

그런데 각자의 가치관과 중요도에 따라서 마음을 주는 것보다 물질로 때우는 것이 더 편한 대상이 있기는 합니다. 사랑이 의무가 되어 버릴 때 일어나는 슬픈 현상이지요.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매너리즘에 빠지면 쉬이 그렇게 변질됩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그런 태도를 지적하시는 겁니다.

사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이미 충만하시기에 무엇도 더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례와 예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시하신 건 당신과의 사랑의 관계를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하라는 뜻이지요. 의례와 예물은 하느님께 대해 인간이 가지는 사랑과 정성의 아주 작은 표현일 뿐입니다.

그러니 십일조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의무일 뿐,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뜨거운 사랑을 전부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십일조로는 다 담지 못하는 우리의 열렬한 사랑을 하느님 향한 믿음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금 이렇게 정리해 주십니다.

"윗자리, 인사받기"(루카 11,43)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숨은 욕망을 지적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받으셔야 할 사랑과 경외를 제도와 신분에 기대어 가로채고 제 영광으로 누리며 즐기는 모습이지요. 바리사이들이 행복 또는 성공이라 여기는 것들을 예수님께서 불행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잠시의 우쭐함과 만족, 쾌락은 있을지언정 하느님과 관계에도 본인 영혼에도 독이 되는 올가미에 불과하니까요. 지위나 재물, 명예나 찬사는 하느님과 우리를 잇는 탯줄에 아무 영양도 공급하지 못합니다. 실상 자기 영광의 끝은 하느님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질 뿐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율법과 성령을 대비시킵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갈라 5,18)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사는 사람은 율법을 무시하거나 어기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 없이도 사랑을 살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과 일치해 사는 이에게는 사랑이 법이고 지침이며 원동력이 되니까요. 사랑의 실천은 율법의 의무 이행을 넘어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는 예수님과 함께 율법을 완성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


그저 읽고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아름다운 단어들을 만납니다. 이 덕목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획득하는 외부적 보상이 아니라, 성령께 마음을 다해 순종하고 따를 때 존재 안에서 솟아나는 영적 결실들입니다. 잔칫집 윗자리나 사람들에게 인사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이지요.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갈라 5,25)


사도는 우리의 정체성을 콕 짚어 이야기합니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를 움직이는 동력은 외부에 있지 않지요. 우리가 받은 성령만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갑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사랑에 온 존재를 내어맡긴 채 나아가는 이는 율법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의 사랑이 의무로 냉각되지 않도록 늘 성령을 청합시다. 성령께서 우리 영혼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어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지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비록 윗자리나 인사받기가 우리 몫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뜨겁게 뜨겁게 주님 곁에 머무를 수 있으니 족합니다. 성령으로 사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