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0월 12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dariaofs 2020. 10. 12. 05:57

오늘 미사의 말씀은 표징과 믿음의 관계를 이야기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당신 주위로 몰려드는 군중을 향해 예수님께서 한탄하십니다. 군중의 마음에서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보다 저급한 호기심과 탐욕스런 기회주의를 읽으신 까닭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아의 도래는 약속의 성취이고 희망이며 구원입니다. 백성들은 그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걸었던 인물들이 반짝 하고 떠오르다가 사라지기를 무수히 경험해 왔을 겁니다. 이제는 쉽사리 믿기도 어렵거니와 섣불리 믿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 더 살펴보고 더 시험해 보아야 최소한 본전이라도 건질 터입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믿음보다 검증입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

니네베 사람들은 먼 이국에서 온 떠돌이 예언자의 외침을 듣고 믿었습니다. 자기들이 섬기는 신이 있음에도 유다의 예언자가 전하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요나 예언자가 자기들에게 오기 전에 있었던 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도망가다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에게 삼켜지고, 그 뱃속에서 사흘을 지낸 뒤 멀쩡하게 살아서 육지로 나온 신기한 사연을 그들이 먼저 알아서 그를 믿었던 걸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면 요나는 니네베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주력합니다. 요나는 니네베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구원을 언짢게 여길 만큼 그들에게 애정이 없었으니 자기 이야기를 해가면서 그들을 설득할 이유가 없었을 것 같네요.
(요나 4,1-3 참조) 그러니 니네베인들이 접한 것은 오로지 이방인의 입에서 나온 멸망의 예언뿐이었을 겁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루카 11,30)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를 표징으로 받아들입니다. 자기들이 섬기는 민족의 신도 아니면서 자기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방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베푸시는 사랑의 표징으로 말입니다. 요나는 민족의 적에게까지도 무한히 자비하신 사랑의 하느님의 표징입니다. 요나의 파견을 통해 하느님은 어느 한 민족을 관할하는 지방 신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이심이 드러납니다. 온 세상 모든 만물, 모든 존재는 야훼 하느님의 귀한 소유입니다.

"사람의 아들도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도 이처럼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표징입니다. 군중은 자기들을 믿게 만들어 보라며 예수님께 노골적으로 기적을 요구하지만, 이미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적이고 신비이며 표징입니다.

이 사랑의 표징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믿기 위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데이터는 앎을 위한 것이지 믿음을 위한 것이 아니지요. 믿을 이라면 기적 없이도 믿습니다. 믿음은 선택이고 결단이며 자신을 내던지는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구약의 백성인 유다인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약의 백성인 교회를 아브라함의 두 부인, 하가르와 사라에 비유합니다.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갈라 4,31)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율법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성령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율법의 문자에 달려 있지 않고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라 5,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인정받고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모든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과 일치함으로써 우리는 성령이 이끄시고 허락하시는 대로 자유로이 사랑하고 헌신합니다. 우리는 이 자유를 육의 허영이나 욕정, 탐욕을 만족시키는데 쓰지 않고,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데 쏟아붓습니다. 진정 그리스도 안에 자유로운 이는 그렇습니다.

가장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가장 비참한 죄인으로 모습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의 표징입니다.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현존하시며 당신 사랑을 보여 주셨지요. 그러니 이를 믿는 우리에게는 다른 표징이 필요없습니다. 사랑의 완결판이 우리와 함께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삶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도무지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지금 내 모습이 나에 대한 주님의 최선인지 회의가 들 때, 한 번 더 용기를 짜내어 주님께 믿음을 고백합시다. 내 앞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시는 예수님이 나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생생한 증거임을 믿읍시다.

믿음의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를 응원합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구원은 믿음과 동행하는 길이고, 또 그 결승점이니,
"억눌린 이를 흙먼지에세 일으켜 세우시고, 불쌍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올리시는 분"(화답송)께 의지해, 힘껏 나아갑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