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손길이 드러납니다.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요한 2,15)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시러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는 율법에 따라 예물을 바치러 온 백성들과, 그들에게서 이득을 취하려는 상인들이 북적이고 있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안에서 통용되는 단위의 화폐로 환전하고 예물로 바칠 동물들을 구입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상인들과 종교 기득권층이 나름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선량한 백성들에게 과중한 짐을 지우는 행태와, 본모습을 잃어가는 성전의 분위기에 채찍을 휘두르신 것입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 2,16)
예수님은 성전의 본질과 맞지 않는 모든 것을 치워버리라고 단호히 명령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장사"라는 말씀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물질과 재물은 인간의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건이라서, 거룩함마저 재물과 적당히 버무리면 이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이 하느님의 집, 성전에서 이용당하고 착취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으로는 결코 하느님의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성전은 하느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기도의 집"(루카 19,46 참조)이니까요. 백성들은 성전에 와서 진심에서 우러나는 예물을 주님께 바치고 사랑을 고백하는 가운데 그분에게서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그간 져온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고 주님 품에서 쉬며 그분과 더욱 가까워지는 곳이 바로 성전이지요. 예수님은 성전이 진정한 본질, 정체성, 역할을 회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을 이야기합니다.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에제 47,12)
에제키엘 예언자가 본 환시 안에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닿는 모든 것을 되살리고 생동감을 일으킵니다. 우글거리며 역동하는 모든 생명의 환성와 환희가 들리는 듯하지요.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 있게 하시는 "성령"이기도 하고, 또 성전에서 선포되어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전이 깨끗하고 거룩한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고 존재할 때, 세상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성전에 온갖 물질주의와 탐욕, 형식주의와 편가름이 들어차면 세상에 내어 줄 것은 절망과 냉소의 기운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성전인 우리 개인 한 사람 한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교회와 공동체, 우리는 세상에 선하고 온유하고 진실된 기운을 불어넣는 존재로 불리웠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되살리고, 더 풍요롭게 하는 성전 본연의 정수를 되찾아 꼬옥 간직하라고, 오늘 예수님께서 이처럼 크게 뒤흔들어 주십니다.
영성생활 안에서 주님의 성전인 우리 마음도 악의 각축장이 되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은 생각과 기억과 상상과 감정이 우리를 들쑤셔 주님을 정향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주님 안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분산시키지요. 그럴 땐 마치 마음이 소란스럽고 분노 가득한, 어둡고 음습한 악의 소굴이 되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이 모두를 쫓아내시고 쏟아 버리시고 뒤엎어 버려 주시기를 청합시다. 우리 개개인이 주님의 거룩하고 정결한 성전이니 그 본모습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도 예수님과 협력할 수 있습니다. 영적 여정에서 성령의 현존을 청하고 다가오신 말씀에 반복해서 깊이 머무르는 기도는 아주 효과적인 무기입니다.
사랑하는 벗님!우리 모두 고통 가득한 세상을 되살리고 생명을 주는 "생명의 물"이 되어 봅시다. 하느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가 우리다울 때 가능합니다. 주님을 품고 그분과 맞닿은 채 살아가는 모든 이는 이미 생명이기에, 그에게서 성령이, 말씀이 전해집니다.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생명이 되려 애쓰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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