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기념일

dariaofs 2020. 11. 11. 06:02

오늘 미사의 말씀은 감사의 은총을 보여 주십니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7,12-13)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을 발견하고는 외칩니다. "멀찍이." 전염 가능성 때문에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들이라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합니다. 예수님과 그들 사이의 거리감이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합니다. 아마 그들의 외침을 들으시는 예수님 마음도 그리 아프셨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루카 17,14)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환자들의 몸을 어루만져 주시면서 치유를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가서 사제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이미 당신은 치유를 결심하셨기에 한시도 지체하지 않게 하신 것 같습니다. 또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삼가며 "멀찍이" 서 있는 그들의 마음도 존중하신 것이지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루카 17,16)

예수님 분부를 "믿고"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에서 치유가 일어납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또 기뻤을까요? 아홉 명은 말씀하신 대로 사제를 찾아 달려간 것 같습니다. 어서 '정결한 상태'라는 선언을 듣고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겠지요.

그런데 한 외국인, 사마리아 사람이 가던 길을 돌이켜 예수님께 돌아옵니다. 감사드리고 싶어서였지요. 그에게는 공동체의 정결 선언이나 복귀 허가보다 예수님께 올리는 감사가 더 시급하고 중요했습니다.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예수님과 거리상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그가 바로 발 앞, 그분 가까이까지 다가옵니다. 그와 예수님 사이는 거리도 가까울 뿐더러 아무 장애물이 없습니다. 감사를 잊지 않은 그는 치유만이 아니라 "주님 가까이"라는 관계성까지 획득한 겁니다.

감사는 거리를 좁힙니다.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 영적 거리도 친밀하게 바꿉니다. 감사는 상대방이 나에게 베풀어 준 호의를 내가 안다는 뜻입니다.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보여주고, 축복의 마음을 가득 담아서 이 모든 게 당신 덕분이라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치유받은 사마리아 사람은 육신의 회복과 더불어 주님 가까이를 차지했던 영적 경험까지 간직하게 된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구원의 원리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티토 3,5)

우리가 받는 은혜와 도움은 우리 자신의 공이 아닙니다. 죄악으로 부패해 가면서 악취를 풍기는 영육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려는 주님 자비의 덕입니다. 이 기적은 때로는 멈추어서, 때로는 가는 길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분께서 이르시는 대로,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가던 길을 계속 가면서 그분의 뜻이 내 존재 안에서 이루어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드릴 것은 감사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자기 능력 밖의 일 투성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곧 인생일 터이니, 주님 발 앞에서 점점 더 무력해지고 점점 더 작아져가면서 바칠 수 있는 건 감사뿐입니다. 겸손하고 솔직할수록 감사는 더 깊은 진정성을 띱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너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다."(복음 환호송)

감사는 주님 가까이에서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는 친밀한 행위입니다. 세상을 다 가지신 주님이시건만, 보잘것없는 우리 감사에 그분은 감동하고 행복해하십니다. 감사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 더 내밀해집니다. 이로써 우리가 받은 은총과 우리의 믿음이 확증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벗님! 주님 "멀찍이서" 맴돌지 말고 가까이, 아주 가까이 다가가 그분께 마음을 드리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속삭이는 찬양과 흠숭과 영광, 사랑과 감사로 주님께서 흡족하고 기쁘실 겁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