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사람의 아들의 날"을 맞는 우리의 자세를 이야기하십니다.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루카 17,26)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루카 17,28)
예수님께서 그날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누구도 그 때와 그 시간을 모른다는 전제에서 말씀하시지요. 노아 때, 그리고 롯 때에 세상에는 극소수의 의인이, 악에게 휩쓸린 대다수의 사람들 틈에서 제 방향을 고수한 채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노아나 롯은 어려움 중에서도 그 경외심을 부여잡고 살았지요. 악을 일삼는 이들은 제 멋대로 욕망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멸망이 닥친 것입니다.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 내려가지 말고, ... 들에 있는 이도 뒤를 돌아서지 마라."(루카 17,31)
예수님께서 당부하십니다. 두고 온 재산이나 뒤에 남은 것들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의미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살아온 지향과 방향성, 품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라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어차피 모든 인간은 진작부터 살아온 그 모습 그대로 그날을 맞이할 테니까요.
제1독서에서 요한 서간의 저자는 그리스도의 적들이 흘리는 교설에 흔들리지 않도록 당부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2요한 5)
이미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인 이들에게는 새로운 무엇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셨고, 행하라 명하신 사랑의 계명, 그것으로 충분하지요. 주님께서 떠나시고, 박해가 닥치고, 반대자와 이단 교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오직 "사랑"입니다. 이는 "처음부터" 들어서 알게 되었고, 지금 이 순간까지 지속해서 간직해 온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2요한 9)
신앙은 연속성 안에서 성장합니다. 영혼은 처음 불리웠을 때 받은 그 사랑을 간직하면서 더 깊고 풍부하게 자라나지요. 악은 한 영혼이 하느님과 더 친밀히 결속되는 것을 방해하려 속이는 자들을 앞세웁니다. 아직 어리고 여린 이들의 빈틈을 파고들어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들은 그대로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이들은 어떤 파도가 닥쳐도 헷갈리지 않습니다. 설령 "그날"이 닥친다 해도 마찬가지지요. 우리는 그 날, 그 때가 닥친 순간까지 살아온 모습 그대로 구원의 길로 들어설 것입니다. 지상에서 구원을 앞당겨 살아온 이는 거대한 연속성 안에서 진정한 구원으로 유연히 건너갈 것입니다.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루카 17,34-35)
우리는 서로 참 다릅니다. 태생과 역사와 배경, 취향과 흥미와 성향 등등, 그리스도인이라는 공통점 안에서조차 엄청나게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지요. 주님은 분명 자비하시지만 우리 각자가 맞이할 구원은 개별적이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각자 삶에서 자신이 고수하고 머무른 모습이 연속성을 타고 구원으로 넘어갈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맘껏 탐하고 즐기며 살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겠다는 욕심은 말 그대로 허욕이 되겠지요. 살아서 주님을 기쁘게 찬미한 이는 그 기쁨과 찬미의 완성을 누릴 것입니다. 살아서 베풀고 나눈 이는 그 나눔과 베풂의 절정 안에서 더없이 행복하겠지요. 이처럼 여한없이 사랑한 이는 마지막 때에 내려갈 필요도, 뒤로 돌아설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여태까지 걸온 그대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면 되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주님의 날"인듯 미련이 남지 않게 사랑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 모습을 주님께서 아시니, 그분은 한눈에 우리를 알아보시고 기뻐 뛰며 맞아 주실 겁니다. 그날이 우리에게 최고의 날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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