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선명히 드러납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마태 25,21.23)
주인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나누어 준 재산을 두 명은 받은만큼 곱절로 불렸고, 한 명은 땅에 묻었다가 원금만 되돌려드립니다. 받은 것을 성심껏 관리한 두 명에게 주인이 이렇게 칭찬을 하지요.
"작은 일에 성실함"
주인이 바라는 것은 대단한 성과나 큰 이윤이 아니라 받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다루는 자세일 겁니다. 받은 것이 아무리 적어도 그것을 귀하게 대하는 이는 귀한 열매를 맺을 것이고, 하찮게 여겨 소홀히 하는 이는 받은 것마저 잃고 말 것입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마태 25,29)
이 "탈렌트"를 물리적 재능이나 재물로 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이에게는 신앙과 영혼의 능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앙과 영혼의 성장은 거기에 마음을 쓰며 갈고 닦는 이에게 더 부여되는 은총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하찮게 여기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에게는 쓸모없이 사장되는 미물에 불과할 뿐이지만요.
마치 경기를 준비하는 운동선수들이 각자가 받은 육체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듯, 영적 여정에 들어선 이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비록 스포츠의 기록처럼 눈에 보이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지만, 그 성장을 주님은 아십니다. 어렴풋하게나마 자신도 알고요.
영적 은총이 비록 세속의 눈에는 작고 하찮고 눈에 띄지조차 않더라도, 주님 곁에 머무르는 우리에게는 진심과 성실을 다해 가꿔나가고 싶은 가장 귀한 보물이지요. 더 풍부히 키워 주님께 되돌려드릴 선물일 수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훌륭한 아내에 대한 칭송이 들립니다.
"훌륭한 아내를 누가 얻으리오?"(잠언 31,10)
오늘의 독서 대목은 '누가 훌륭한 아내를 얻을지'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은 남편될 자의 조건이 아니라 훌륭한 아내에 대한 묘사지요. 말하자면 다른 답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혜문학에 등장하는 여인, 아내는 말 그대로 여인이고 아내일 수 있지만 "지혜"를 의인화하는 묘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언의 저자는 지혜의 매력을 펼쳐 보여줌으로써 그런 지혜를 소유한, 지혜의 사람이 되라고 초대하는 겁니다.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잠언 31,20)
세상은 가난하고 불쌍한 이를 억압하고 착취하며 자기와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난과 절박함을 이용해 재산을 불리면서도 결정적으로는 소외시키지요. 하지만 영의 세계를 귀하게 여기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받아 소중히 성장시킨 영혼의 "지혜"가 하느님 마음을 고스란히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잠언 31,30)
여기서 콕 짚어 언급한 "우아함"과 "아름다움"은 세속적 차원의 위선을 가리킵니다. 있어 보이고 나아 보이고자 나름 공들여 겉꾸민 허세는 오히려 텅 빈 내면과 빈곤한 영혼을 증명할 뿐이지요. 지혜는 주님을 경외하는 영혼입니다. 내면과 영혼을 귀하게 여기며 가꾸는 이에게 지혜이신 주님은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날을 위한 준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1테살 5,4-5)
어둠은 육과 세속과 죄악의 상태를, 빛은 내면과 영과 덕행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주님의 날"은 각자 삶의 지향을 어디에 두고 무엇을 가꾸며 살아왔건 결국은 맞이해야 할 순간이지요.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1테살 5,6)
깨어 있음은 영혼이 하느님과 사람, 세상 물질 사이에서 균형과 질서를 잡고 있는 상태입니다. 깨어 있는 이는 세속 물질보다 하느님과 이웃에 관심을 둡니다. 하느님을 향해 기도와 경외와 사랑을 올려 드리고, 사람을 향해 연민과 선행과 자선을 베풀지요. 재물은 하느님과 사람을 섬기기 위해 성실히 다루고 선하게 사용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연중 마지막 직전 주일로서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입니다. 주님과 셈을 하는 그날, 우리가 품었던 모든 가난한 이들이 주님께 드릴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가난한 이들과 날줄 씨줄로 엮어 기도와 눈물로 완성한, 아름답게 성장한 영혼이 그 선물입니다.
그날, 우리를 맞이하실 주님께서 흡족해 외치실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착하고 성실한 종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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