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아름다운 구원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루카 19,3)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부자 세관장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고 싶어합니다. 부자에다 권력까지 지녔지만 율법으로 그는 죄인일 뿐이니, 구원의 문제는 그에게 숫자처럼 딱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힘껏 달려가 체면도 잊고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메시아로 소문난 이를 보기 위해 올라가는 자캐오의 모습은, 성취를 위해 오르고 또 오르는 인간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오름을 성공으로, 내림을 실패로 규정한 세상의 시각에 맞춰 대부분의 사람들이 높은 곳을 추구하지요. 정작 중요한 건 낮은 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무 위의 자캐오에게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하늘 자리를 버리시고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내려와야 합니다. 여기에 주님이 계시니까요. 죄인들 틈으로 오셔서 죄인으로 취급당하신 그분을 만나고 차지하려면 우리는 위가 아니라 아래를 택해야 합니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루카 19,6)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신이 나서 예수님을 집에 맞아들인 자캐오는 누가 뭐라지 않았는데도 희사와 보상을 선언합니다. 부유한 세관장으로 철면피처럼 산 듯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죄책감과 동포에 대한 부채의식이 마음에 돌덩이처럼 얹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과거 죄의 고리를 끊고 새로이 거듭나겠다고 고백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구원을 얻기 위한 자세를 권고합니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묵시 3,15)
세상살이에서는 무난해야 무탈하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영적 삶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은 너무 차거나 너무 뜨거우면 입에서 뱉지만, 주님은 오히려 미지근하면 뱉어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영적 삶은 선과 악의 긴장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집중하는 여정입니다. 하느님 반, 세속 반의 양다리는 없습니다.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상태일 뿐이지요. 혹 누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만 믿고 어느 정도 불신하는 게 아니라, 그저 온전히 믿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악에게 한 영혼을 반반씩 나누어 가지자고 하지 않으시니까요. 하느님과 악은 공존할 수 없고, 또 하느님은 당신께서 사랑하는 영혼을 단 한 부분이라도 결코 악에게 내어주지 않으십니다. 안전지대에 머물고 싶어하는 건 믿음으로 자신을 던지길 두려워해서 인간적 보루를 남겨두려는 인간의 미지근함 때문입니다.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묵시 3,19)
주님 향한 사랑 때문에 체면도 잊고 자신을 던진 적이 있는 이라면 알아듣는 말씀입니다. 예언자들과 사도들도 그러했고, 세속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수한 순교자들과 성인들 역시 주님 향한 "열성"으로 회개하고 사랑했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헝가리의 왕녀 엘리사벳이 그랬고 또 우리가 만난 자캐오 역시 그 표본이지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마치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의 마음을 들려주는 듯합니다. 자캐오는 자신의 집 문은 물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혀 주님을 맞아들였고, 그분과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친교가 가난한 이들에게 축복으로 열매를 맺었지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루카 19,9)
우리 중 누가 자캐오를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어둠을 벗어버리고 빛 한가운데로 나온 사람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열렬한 갈망으로 주님을 맞아들여 죄의 그늘로 음울했던 거처를 구원의 장소로 바꾸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분을 맞아 그분과 먹고 마시는 사이 구원이 우리 안에 들어올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웃에게도 축복이니, 더욱 뜨겁게, 더욱 열렬히 갈망하고 사랑하길 축원합니다. 오늘 주보 축일을 지내는 재속 프란치스칸들을 기억하며 축하를 드립니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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