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주님은 "다시"라는 말씀으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38)
예리코의 눈먼이가 예수님께 청합니다. 주님 앞에 서기까지 그는 적잖은 난관을 겪은 터입니다.
그는 먼저,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무언가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물었고", 예수님이 오신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는 큰 소리로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칩니다". 군중의 꾸짖음에도 아랑곳않고 더 크게 예수님을 부릅니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예수님 앞입니다. 구원을 위한 그의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그를 여기까지 끌고왔습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8,41)
그가 예수님께 자신의 진정한 바람을 아룁니다. "다시"! 그는 본래 볼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태생 소경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는 "봄"의 의미를 아는 사람, "봄"의 체험과 추억을 간직한 사람, 그래서 "다시 봄"의 기쁨과 환희를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8,42)
볼 수는 없지만 지금 이 길을 걸어가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신 메시아임을 굳게 믿은 그에게 예수님께서 믿음의 보상을 허락하십니다. 이에 그는 "즉시"(루카 18,43) 다시 보게 되지요.
제1독서에서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에페소 교회에 내리시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 안다."(묵시 2,1)
우리의 드러나지 않는 헌신과 노고와 인내가 주님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뭇사람과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숨은 희생을 그분이 기억하시니, 누가 보든 안 보든 온 존재를 바쳐 주님을 섬기는 이에게 이만한 위안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묵시 2,4-5)
우리의 성공과 실패, 어느 것 하나 주님께 감추어진 것은 없습니다. 세례, 견진, 회개, 혼인, 서원, 서품 등등 은총의 출발점에 서서 열성에 불타올라 결심하고 다짐했던 그 뜨거웠던 사랑을 주님은 기억하고 또 그리워하십니다. 그때 우리 마음에 불을 지르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고, 우리 마음 안에 타올랐던 불이 곧 그분이시니까요.
세파에 시달리며 먼길을 오는 동안 희석되고 약화되어 온도와 열기를 잃어버린 그 지점을 찾아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두 주도 채 남지 않은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고 초대장을 보내시는 겁니다.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우리 각자는 압니다. 그분과 나누었던 처음 사랑, 처음 고백, 처음 청원, 처음 두려움, 처음 실패, 처음 통회, 처음 용서... 믿음이 무뎌진 걸 수도 있고, 의탁에 불순물이 끼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우상을 기웃댄 것일 수도 있고, 남 모르게 하던 선행에 지쳤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 것들이 더 재미나고 영혼 상태는 멈춰버린 듯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각자의 현주소는 우리의 개인 소명만큼 다양할 겁니다.
"다시"
주님께서 다시 하라고 하십니다. 그간 길을 잃었거나 엇나갔거나 주저앉아 쉬었다면, 그 지점이 어디라도 좋으니 "다시" 해보자고 독려하십니다. 너의 그 처음 사랑이 참 좋았다고, 다시 너와 일치하고 사랑하고 싶다고 부르십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 주님께 마음을 돌이켜 이렇게 청합시다. 주님을 다시 볼 수 있도록, 주님을 다시 알 수 있도록, 주님을 다시 더 깊이 열렬히 사랑할 수 있도록 청합시다. 우리 바람이 뜨거운 만큼 주님께서 즉시 다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18,43)
예리코의 눈먼이는 바람이 이루어지자 곧바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육신의 "봄"을 회복한 즉시, 영혼의 "봄"에로 몸을 던진 것이지요. 그의 역동적이고 적극적이던 갈망이 같은 모드로 흘러갑니다. 예수님 곁에서 엮을 그의 미래도 그렇게 꾸려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각자 주님과 나의 사랑은 무사한지 점검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처음 사랑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계시니, "다시" 볼 수 있기를 청하며 그분께로 힘껏 방향을 돌립시다.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따르는 제 길을 되찾아 활짝 피어날 것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산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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