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기도의 소명으로 불리운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기도는 우선 항구해야 하고, 지속해야 하며, 희망의 상태를 견지해야 합니다. 사람이 환경이나 감정의 영향을 아예 안 받을 수는 없지만, 기도가 존재의 중심에 들어선 이는 크게 전복되지 않고 기도의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내가 사랑 안에 머무르는 상태지, 원하는 걸 누르러 자판기 앞으로 가는 행위가 아니지요. 그럼에도 많은 경우 착각을 하기는 합니다. 우리가 무지하고 뻔뻔스러워서가 아니라, 그만큼 처한 삶의 질곡이 급박하고 절실해서일 겁니다.
주님 앞에 고요히 머무르며 사랑을 나누는 기도는 일상에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며, 일을 하며 마음 안에서 주님과의 끈을 유지하는 겁니다. 주님 현존을 의식하며 머무름의 상태를 지속하는 기도 안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무얼 바라는지 경계가 사라지고, 그저 서로가 서로를 바라는 사랑의 갈망과 일치의 리듬이 교차합니다.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루카 18,7)
예수님은 재판관과 과부를 비유로 드십니다.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재판관은 물신주의에 사로집혀 오만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대다수 세상 사람을 가리키고, 과부는 그야말로 의지할 이 없는 가난한 약자의 전형입니다. 약자는 강자를 힘으로 움직일 수 없지만, 귀찮을 만큼 끈질기게 졸라대면 결국 가능하게 되리라는 것이지요.
부르짖음이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불의한 사람조차 이를 들어 주는데, 의로우신 하느님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게다가 "주님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습니다. 기도하는 이는 이미 주님께 선택된 이들이니까요.
제1독서에서는 순회 선교사들을 위한 요한 서간 저자의부탁이 나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이므로"(3요한 7)
순회 선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러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입니다. 기쁜 소식은 널리 전해져야 하지요. 이제 막 꼴을 갖추어 가는 초대교회는 파견된 선교사들을 통해 이방인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새로운 교회를 설립합니다. 주님의 심장에서 시작되어 온 세상으로 뜨거운 핏줄을 이어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한 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3요한 8)
그리스도를 위해 길을 나선 이들은 자기 영달이나 안위를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기도와 헌신은 자신이나 가족의 범위를 넘어 온 세상의 모든 피조물, 특별히 더 힘겹고 고통스런 처지에 있는 이들을 향하지요. 그들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도 주님 손에 의탁한 채 속셈 없고 계산 없이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가족과 경력과 재산을 버린 채 달려나갈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다 같은 소명으로 불리움 받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신 각자의 자리에서도 "그리스도를 위한 길"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투신하는 이들을 기도와 나눔으로 지원하는 것이지요. "진리의 협력자"는 그들이 받을 상을 함께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마태 10,41 참조)
이 말씀 묵상을 통해 만나는 우리 모두는 기도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입니다. 안 그렇다면 재미와 쾌락이 넘치는 이 세상에서 괜히 말씀을 찾아 뒤적이고 머무를 리가 없겠지요. 어둡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은 하느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청하며,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주님이 귀찮으실 정도로 졸라대며 부르짖는 이들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지요.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이기도 하고 "진리의 협력자들"이기도 합니다. "귀찮게 졸라대는 과부"이기도 하고 "밤낮으로 부르짖는 선택된 이들"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이 세상에 소중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도할 때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값싼 위로를 구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이르십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일이니, 하느님과 나, 모두 존재를 걸고 머물러야지, 입으로만 떠들고 제물만 밀어넣는 것으로는 서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도 아시고,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지요.
주님께 선택된 벗님, 그리스도를 위해 길을 나선 벗님, 진리의 협력자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끊임없이 기도 안에 머무르고, 항구히 기도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받은 소명을 완성해 나갑시다. 그리하여 사람의 아들이 오실 때 우리에게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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