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2월 27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dariaofs 2020. 12. 27. 02:17

오늘 미사의 말씀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성가정의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복음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루카 2,22)

요셉과 마리아는 율법이 명한 대로 아기를 주님께 봉헌합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질서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지요. 이 모두를 행하는 선량하고 소박한 부부의 모습을 관상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참되고 순수한 이들입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

성령께서 의롭고 독실한 시메온을 성전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만남의 순간은 그가 평생을 걸고 기다려온 "주님의 때"입니다. 그간 성전을 스쳐갔을 무수한 권력자와 학자, 부자들에게서가 아니라, 가난한 부부가 안고 온 작고 여린 아기에게서 주님의 구원을 볼 수 있는 영의 시력이 놀랍습니다. 성령께서는 당신께 일생을 의탁한 이의 바람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시니, 성삼위 하느님의 비밀, 그 신비를 그에게는 감추지 않으십니다.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루카 2,34)

아기를 안고 기쁨에 차서 올리는 시메온의 찬미는 아기와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으로 가득합니다. 이 내용은 아기의 부모가 천사에게서 들은 그대로이니, 그들은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비밀을 예언자의 입으로 확인한 셈입니다.

하지만 시메온는 듣기 좋은 덕담으로 그치지 않고 진정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것이 예언자의 소명이니까요. 아마도 성모님께는 이 귀한 아기가 반대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다는 말이, 당신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이라는 예언보다 더 놀랍고 아프셨겠지요.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루카 2,36-37)

이 은총의 순간에 한 사람이 더 초대됩니다. 성경 안에서 이곳에만 잠시 등장하는 예언자 한나입니다. 그녀는 세상의 눈에는 박복하고 불쌍한 인생일지 몰라도 하느님과 일치를 누리는 복된 여인이지요. 이렇게 성전에서 주님이 봉헌되는 순간은 두 증인을 통해 세상 역사에 새겨집니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루카 2,39)

이스라엘의 변방 갈릴래아, 그중에서도 작고 소박한 고을 나자렛에 성가정이 둥지를 틉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보호하고 양육하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여정에 함께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내는 성가정 축일은 예수, 마리아, 요셉께서 꾸리신 성가정의 모범을 기억하고 본받고자 기념하는 축제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가정과 공동체가 성가정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서도 인간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체험으로 알지요. 저마다 약하고 부족한 우리가 성가정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1독서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듣습니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집회 3,6)

오늘 집회서의 권고는 누가 누구에게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일방적 명령이 아니라 관계성의 근원을 이야기입니다. 부모, 자녀가 맺는 관계는 하느님과의 관계성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는 사람을 존중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면서 그분의 모상인 사람을 짓밝을 수는 없지요. 혹 그런 이가 있다면 그가 주장하는 하느님과의 관계는 거짓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가 존중하는 "사람" 범주 안에 부모도 있고 자녀도 있으며, 형제자매와 이웃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는 이 관계성을 유지하는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콜로 3,12)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고 소중하게 창조된 사람인지 아는 이는 "~~다움"을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요! 이 앎이, 여러 모로 부족한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경외하게 하고, 사랑받는 존재답게 살도록 우리를 안내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콜로 3,14)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이는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엮어갑니다. 부모, 자녀, 형제자매와 이웃, 일면식 없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까지 사랑의 울타리를 넓혀가지요. 성가정은 이 사랑의 확장을 통해 가정에서 공동체, 사회, 민족과 국가를 넘어 온 세상을 하나의 공동체로 아우르는 신비입니다.

관계적 어려움 속에서 성가정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면 관계성의 근원을 되짚어보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인 하느님, 어머니인 성모님, 형제인 예수님, 그리고 나. 우리의 관계는 어떤가요? 하느님을 경외하고 성모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나"답게, 이 관계성에서 솟아나는 사랑의 에너지로 가족과 공동체의 구성원을 바라보고 대하는 과정 안에서 성가정이 형성되어 갈 것입니다.

작고 여린 아기 예수님이 우리 품에 안겨 당신을 우리에게 온전히 맡기시니, 부성과 모성을 총동원해 조심스레 사랑하고 아껴드립시다. 하느님처럼 자비로이 다독이고, 요셉 성인처럼 묵묵히 보호하고, 또 마리아처럼 헌신하며 사랑을 엮어갑시다. 성가정의 신비가 기적처럼 나에게서 시작될 것입니다.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자녀인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을 통해 온 세상이 성가정이 되어갈 것이니 감사합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 우리 가정과 공동체를 돌보아 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