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구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마태 10,17)
주님 성탄 대축일 바로 다음날 우리는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의 죽음을 마주합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구원자께서 죄와 어둠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리라는 기대감이 무르익기도 전에 말씀은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박해를 각오하라고 일갈하십니다.
사람을 믿지 말고 경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압니다. 모든 사람은 신뢰하고 사랑해야 할 하느님의 모상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람이 무언가에 과도하게 집착해 광적으로 매달리면 그 영혼이 악의 놀이터가 되기 쉽습니다. 무언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타인의 귀한 생명을 노리기까지 하지요. 그런 상태를 합리화하고 고집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제1독서에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화를 내고 이를 갈며 큰 소리를 지르고 귀를 막는 이들과,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진리를 선포하는 스테파노입니다. 전자의 무리는 달려들고 몰아내고 돌을 던지지요. 사도행전 저자가 서술한 그들의 행동만으로 그들이 몹시 광분해서 이성을 잃고 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이에 반해 스테파노는 지혜와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성삼위 하느님을 평온히 관상합니다. 외적으로 보면 죽을 위험에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지만 스테파노는 영으로 이미 진복의 영광 안에 들고 있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도 등골이 서늘할 지경입니다. 사람들이 제자들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의회에 넘기고 채찍질하고 끌고가며 죽이고 미워할 것입니다. 새로운 길이 아무리 의롭고 유익해도 기득권 세력에게는 저항하고 공격해야 할 이물질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길 없이도 이때껏 누리며 잘 살아온 이들에게 복음은 제거해야 할 위험요소일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박해와 모욕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묘수를 알려주시기보다 "견디라"고 하십니다. "견디고 인내함"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지요. 구원이 현세적 출세나 풍요를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구원에 이르는 길도 반드시 현세적 안위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걱정하지 마라."(마태 10,19)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걱정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우리 대신 말씀하시는 성령께 의탁하는 것뿐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는 훨씬 혹독할 것이기에 결단이 필요하지요. 우리를 부르시고 사랑하시는 그분이 구원자이심을 믿는 믿음의 결단이 우리를 둘러싼 공격과 모욕, 폭력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성 스테파노 순교자의 모습은 비록 육신의 생명은 사그라질지라도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의 영광 안에 들 희망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지요. 이 희망으로 믿음을 결단하고 담담히 나아가라는 예수님의 독려는 이천 년 전의 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지금 성탄 축제 안에 있습니다. 마냥 좋고 행복한 순간만이 아니라 고통과 눈물과 죽음도 축제의 일부입니다. 구원자의 강생 안에는 이 모두가 녹아있고 우리 삶도 마찬가지지요.
주님께 신의를 다한 첫 순교자 스테파노 성인과 함께 구원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어지러운 세상 한가운데를 지나는 우리가 구원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성탄 8일 축제 둘째 날인 오늘도 거듭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성 스테파노,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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