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의 전환을 보여 주십니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온 때에, 그들과 맺은 계약과는 다르다."(히브 8,8-9)
히브리서 저자는 예레미야 예언자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예레 31,31-34 참조)을 인용하여 옛 계약과 새 계약의 관계성을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성조들과 계약을 맺으셨던 하느님께서 이제는 먼저 새 계약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당신 계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히브 8,10)
이번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법을 돌판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에 새겨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존재 안에 각인시키시겠다는 뜻이지요. 이는 사실 새삼스런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 존재 안에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는 순간부터 이미 하느님의 마음이 스며들었으니까요.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마르 3,16)
열둘은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그대로 이어받은 완전한 숫자입니다. 야곱이라는 한 아버지의 열두 아들에게서 번성한 구약의 백성이, 저마다 다른 출생과 성장배경을 지닌 채로 예수님께 모여와 영적으로 형제자매를 이룬 새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확장됩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마르 3,13)
선택 기준은 에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그 주도권이 철저히 예수님께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열두 사도의 선정은 편애과 불공정일까요?
사실 제자됨이 세속적 영화나 명예, 재물과 번영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뒤따르는 삶이니, 모르지 않고서야 마냥 부러워할 일도 아니겠지요. 안다면 오히려 부르실까 봐 외면하거나 줄행랑을 놓을지도 모릅니다.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마르 3,14-15)
열두 사도를 뽑으신 목적입니다. 당신과 함께함, 복음 선포, 치유와 구마의 권한 부여라 요약할 수 있지요. 기존의 종교 권력은 먼저 율법 지식을 머리에 넣어주고, 율법이 정한 예식을 익히도록 이끌겠지요. 예수님의 제자 양성은 함께함, 복음 선포, 구마와 치유 권한 부여라는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법을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 새겨주는 방식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공동생활에서 기도와 사랑을 배우고, 복음 선포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체험하며, 구마와 치유 권한을 통해 연민과 자비를 성장시킵니다. 하느님의 법이 돌판에서 하느님 모상인 인간 내면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첫째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히브 8,13)
하느님께서 구약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새로운 계약이 에수님을 통해 펼쳐집니다. 옛 것에 매여 죽은 문자와 씨름하던 만물이 비로소 새로운 숨을 들이키는 때입니다. 옛 계약에서 새 계약으로의 전환이라는 '비연속성'과,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사도를 통해 하느님 백성을 구성하는 '연속성' 모두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들어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새로운 법이 마음에 새겨진 이들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율법이 아니라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이시지요. 말씀이 통째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니 글을 몰라도, 신분이 낮아도, 민족이 달라도 하느님의 뜻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죄스러움과 부족함을 아시고도 우리를 부르시어 당신 곁에 두시고, 얕은 지혜와 아둔한 혀로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초라한 연민이나마 치유와 위로의 도구로 쓰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저마다 받은 우리의 소명이 금수저, 흙수저처럼 태생적이지 않고 저마다의 영혼 깊이 새겨진 사랑의 흔적이니 우리는 행복합니다. 제자로 부르심 받은 우리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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